“그러나 하나님은 내려놓으라고 하신다. 왜냐하면 더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해서다. 내려놓을 때 주어지는 가장 좋은 것은 세상이 줄 수 없는 자유와 평강이다.”
10년 전 이용규 선교사가 ‘내려놓음(규장)’이란 제목의 책에서 했던 말이다. 이 선교사는 내려놓음을 “내가 비워지고 하나님으로 채워지는 삶”으로 정의했다.
일류대를 나와 미국 유학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던 그였다. 그러나 안정된 삶을 포기하고 선교사의 길을 걸었다. 내려놓음의 즉각적인 결과는 광야로 내몰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광야는 하나님과 대면의 시간이었고 채워짐의 역사였다고 이 선교사는 고백한다. 내려놓음은 ‘천국의 노마드(유목민)’였던 것이다.
바야흐로 내려놓음 정국이다. 9일 국회는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을 가결했다. 직무정지된 박근혜 대통령은 자신의 권한과 지위를 내려놓아야 한다. 18년 정치인생도, 이전에 맺었던 모든 인연도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사이비교주 최태민 일가와의 비극적 만남까지도 말이다.
박 대통령은 이미 지난달 29일 4차 대국민 담화에서 “저는 이제 모든 것을 내려놓았습니다”라고 밝힌 바 있다. 다음 단계는 광야 생활일 수 있다. 그러나 광야는 박 대통령 개인과 대한민국을 위한 채움의 시간이 될 것이다.
성경의 역사에서도 비슷한 시기가 있었다. 구약성경 사사기에 등장하는 삼손에서 확인할 수 있다. 사사기는 여호수아에서 이스라엘 왕조 수립까지를 다룬다. 주님은 사사들을 일으켜 약탈자의 손에서 이스라엘 민족을 구했다. 사사들은 재판을 담당했다. 그래서 영어성경은 사사를 ‘저지(judge)’라 표현한다. 사사가 종교적 제의를 담당하는 경우도 있었다.
사사기는 어둡고 폭력이 난무하던 시대를 반영한다. 포로로 잡힌 왕의 엄지손가락과 엄지발가락을 자르는 잔학스러운 장면(1:6∼7)으로 시작해 끝없이 내리막길로 향한다. ‘바이블 맵’의 저자 닉 페이지는 “사사기는 인간 사회의 단상을 보여준다. 하나님 없는 인간상이다. 그래서 사사기는 ‘그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의 뜻에 맞는 대로 하였다’는 말씀을 되풀이한다”고 풀이했다.
삼손(13:1∼16:31)은 외로운 영웅이었다. 그의 부모들에게 나타난 천사는 특출한 아이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곧 ‘나실인(Nazirite)’이 된다는 것이었다. 나실인은 ‘헌신된’ ‘구분된’이란 뜻의 히브리어에서 파생했다. 공직(公職)을 위해 구별된 사람이었다.
모세 율법(민 6:1∼21)에 따르면 나실인은 포도주와 독주를 입에 대지 말아야 했고 머리카락을 자르지 말아야 한다. 사체(死體)를 포함해 부정한 것을 먹거나 만져서는 안 된다. 모태에서부터 죽는 날까지 하나님께 바쳐진 사람이었다.
하지만 삼손은 고결한 소명을 헌신짝처럼 버렸다. 블레셋을 증오했으나 블레셋 여인을 따라다녔다. 사자를 죽이고 그 주검에 있는 벌 떼의 꿀을 퍼갔다. 부정한 낙타의 턱뼈를 만졌다. 그는 자신의 힘이 하나님으로부터 왔으며 하나님이 다시 거둬갈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다. 그는 시종일관 공직을 사사로이 사용했다.
그의 몰락은 들릴라를 만나면서 시작한다. 삼손은 주님이 이미 자기를 떠난 것을 깨닫지 못했다(삿 16:20). 머리카락을 잘린 삼손은 힘을 잃었고 마침내 눈이 뽑혀 사람들 앞에서 조롱거리로 전락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광야’로 내동댕이쳐진 것이다.
삼손은 광야에서 비로소 하나님을 발견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호소한다. “주 하나님, 나를 기억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는 블레셋 사람들과 함께 죽었지만 사사로서의 명예는 지켰다. 사사기는 삼손이 스무 해 동안 이스라엘의 사사로 있었다(삿 16:31)고 기록한다.
‘사사기 어떻게 읽을 것인가’를 펴낸 저자 전성민(캐나다 밴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원·구약학) 교수는 “삼손은 기대 속에 선택받고 부름 받았으나 개인적 욕망을 추구하는 바람에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하나님의 일을 이루는 길이 됐다”며 “이는 삼손의 이야기만도 이스라엘의 이야기만도 아닐 것”이라고 했다. 이어 “하나님이 주신 힘으로 자기 이익만 추구하다 이제는 조롱거리가 돼버린 오늘날 우리의 이야기가 아닐까 두려울 뿐”이라고 적었다. 하나님은 삼손의 개인적 욕망을 통해서도 섭리하셨지만(삿 14:4) 그 욕망에 대한 책임은 철저히 삼손이 감당해야 했기 때문이다.
라영환 총신대(신약학) 교수는 “사사기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떠났을 때 얼마나 무너질 수 있는지 보여주고 있다. 나락으로 떨어져 가는 이스라엘을 보여주는 것이 사사기의 핵심”이라며 “그럼에도 우리에게 위안이 되는 것은 절망 가운데 하나님이 새 일을 행하신다는 것이다. 절망이 깊을 때 사무엘의 이야기가 시작된다”고 말했다.
‘내려놓음’의 저자는 사람들이 차마 내려놓지 못하는 이유는 세상에 발 하나를 걸쳐 놓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양다리 걸침’은 자기 것을 포기할 수 없게 한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라고 명하신 것은 아들을 빼앗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하나님의 관심은 아브라함이 얼마나 주님의 약속에 신실한가를 보는 것이었다. 칼을 쥔 아브라함의 손이 올라가자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내려놓음의 제사를 보시고 의로 여기셨다. 아브라함은 이삭이 아들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자임을 깨달았을 때 내려놓을 수 있었다.
결정의 시간, 완전히 내려놓을 것인가 아니면 양다리를 걸칠 것인가. 이에 대한 하늘 아버지의 음성은 단호하면서도 세밀하며 따뜻하다. “네 갈 길을 주님께 맡기고 주님만 의지하여라. 주님께서 이루어주실 것이다.”(시 37:5·새번역)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
[대통령 탄핵 성경에서 길을 찾다] “광야로 나서라, 채움의 시간 주시니”
입력 2016-12-09 2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