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장모(23·여)씨는 올해 송년회를 소규모로 진행할 예정이다. 요즘엔 친구들과 만나 술 마시며 웃고 떠드는 것도 죄책감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장씨는 “연말이라 약속을 안 잡을 수는 없어 사람들을 만나긴 하지만 이 시국에 놀아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든다”며 “토요일에 친구를 만나면 죄책감이 들어서 일부러 토요일 약속은 피한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10월에 시작된 주말 촛불집회가 두 달 가까이 이어지면서 송년회와 술자리로 꽉 찼던 연말 풍경까지 바뀌고 있다. 촛불집회로 주말을 반납하고, 주중 송년회도 부담스러워 눈치를 보는 경우가 많아졌다.
대리운전기사 조모(27)씨도 달라진 연말 분위기를 몸으로 느끼고 있다. 지난해 12월만 해도 하룻밤에 10건까지 있었던 대리운전 요청(콜)이 절반으로 줄었다. 송년회가 한창이어야 할 지난주 토요일 조씨가 받은 콜은 4건뿐이었다. 조씨는 “보통 12월은 송년회가 많아 대리기사를 찾는 사람도 늘어나는데 올해는 이상할 만큼 손님이 없다”며 “동료들도 예년 같지 않다는 소리를 한다”고 하소연했다.
잡코리아와 알바몬이 지난달 21일부터 3일 동안 성인 3004명을 대상으로 올해 송년회 계획을 조사한 결과 계획한다고 답한 응답자는 53.6%였다. 지난해 같은 조사(59.8%)에 비해 6.2% 포인트 낮은 수치다.
집회와 송년회를 동시에 해결하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역대 최대 집회가 열렸던 지난 3일 오후 10시쯤 경복궁역 인근 맥줏집은 손님으로 가득 찼다. 친구, 가족, 연인과 집회에 참석한 뒤 회포를 푸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강모(28)씨도 지난달 26일과 이달 3일 ‘촛불 송년회’를 했다. 3일은 학교 동기들과 송년회가 잡혀 있었는데 일정을 바꿔 다같이 집회에 참석하고 술자리로 이동했다. 강씨는 “이번 연말은 최대한 토요일을 비워두고 약속이 생기더라도 같이 집회에 참여하는 쪽으로 생각 중”이라며 “평소 정치에 관심 없던 친구들도 송년회 날짜가 토요일로 잡히면 옮기자고 얘기한다”고 말했다.
촛불집회가 열리는 곳은 특수를 누리지만, 나머지 지역 외식업계는 직격탄을 맞았다. 한국외식업중앙회 관계자는 “연말 특수로 많으면 월 매출이 배 이상 뛰어야 하는데 올해는 기대하지 않는다는 업주들이 많다”며 “최순실 사태 때문에 즐겁게 외식하는 분위기도 아닌 데다 경기불황, 청탁금지법 등 여러 가지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글=임주언 기자 eon@kmib.co.kr, 삽화=전진이 기자
[기획] 달아오른 촛불에… 달라진 송년회
입력 2016-12-09 0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