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교회의 장례문화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정년퇴직 후 말기 암에 걸린 60대 가장의 삶을 그린 ‘엔딩노트’라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있다. 2011년 일본에서 제작된 영화로 우리나라에는 이듬해 11월 개봉됐다. 주인공인 노신사는 자신의 죽음을 앞두고 남아 있는 6개월의 삶속에서 자신이 해야할 마지막 10가지를 챙긴다.
죽기 전에 꼭 해야 할 10가지 일에는 ‘소홀했던 가족과의 행복한 여행’ ‘손자들과 놀아주기’도 있지만, 노인의 최대 관심사는 ‘평생 믿지 않았던 신을 한번 믿어보기’와 ‘장례식장 사전 답사하기’였다.
그는 생의 마지막 단계에서 천주교 신앙을 택하고 성당에서 장례식을 치르고 생을 마감한다. 그가 장례식장으로 성당을 택한 이유에 대해 영화는 두 가지를 이유로 든다. 첫째 성당장례식이 보기에 좋고 자신에게 편안함을 주며, 둘째 남은 사람에게 경제적으로 부담을 주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보기 좋고 경제적인 장례식이 한 인간의 영혼을 구제한 사례다.
2만여명이 출석한다는 서울의 어느 대형교회 주보를 보면 매주 교인들의 혼사와 사망 소식이 담긴다. 매주 5∼6명 정도의 교인이 죽음을 맞고 있으며 죽는 사람의 수가 결혼하는 사람 대비 2배에 이른다.
교회에서 교인의 결혼식을 치르는 건 환영하지만 타계한 교인의 문상절차는 터부(Taboo)시하고 외면하는 게 지금 교회의 현실이다. 개신교회 내에 죽은 자를 위한 공간은 없다.
반면 천주교는 성당 내 여건이 허락된다면 죽은 자를 위한 장례는 물론이고 성당 내 납골당까지 설치한다. 천주교 흑석동성당은 ‘납골당-평화의 쉼터’를 성당 내에 설치해 운영하고 있다.
경기도의 한 대형성당은 유족이 원하면 성당에서 장례를 치르며, 성당 내 시체안치실도 구비하고 있다. 성당의 장례문화는 일반 장례식장보다 비용도 적게 들어 유족들의 경제적 부담도 크게 덜어준다. 교인의 반응도 좋고 지역사회에서 크게 문제를 제기하지도 않는다.
한국의 개신교인은 평생을 교회를 다녀도 죽어서는 교회를 떠나 병원에서 3일간을 어수선하게 보내고 세상을 떠나간다. 개신교회에서 장례문화에 관해 여러 주장이 분분하지만 명확한 해석과 보편적 실천규정은 없는 것 같다. 다만 개신교인은 ‘몸의 부활’을 믿기 때문에 시신을 화장하지 않으며 따라서 교회에 납골당을 설치하지도 않고 죽은 자를 위한 장례의식도 헛된 일이라 생각하며 돌보지 않는 것이 관습처럼 굳어져 있다.
그러나 이런 신학적 관점을 떠나 평신도의 입장에선 교인이 죽어 자신이 다니던 교회를 두고 병원을 전전하는 게 과연 신앙적으로 올바른 것일까 생각하게 된다.
장례는 사람과 영혼의 문제다. 개신교회는 천주교회와 달리 교회 내 장례공간이 없다. 그러나 개신교회 공간을 들여다보면 일부만 보완하면 장례식장으로 활용될 수 있는 교회 내 대체공간들이 얼마든지 있다.
교회식당 소예배실 교육공간 등이 그것이고, 대예배실에서 영결예배도 볼 수가 있어서 장례의 원스톱 서비스가 가능하다.
서울 대형병원 장례식장 특실사용료는 3일장의 경우 수천만원이 들고 5일장의 경우 억대에 육박하는 게 병원 장례의 현실이다. 만일 교회에서 장례를 치른다면 교인의 장례비용 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고 비용 일부를 교회에 헌금할 수도 있어 교회 재정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 나는 우리가 장례문화를 교회 내부로 끌어들여서 신앙적인 근본도 있고 사회적으로도 배척받지 않는 장례문화를 새롭게 창출했으면 한다. 장례문화에 대한 교회의 공론(公論)을 시작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많은 개신교인들은 낯선 병원이 아닌 평생 다닌 교회에서 편안하게 영면하기를 원한다. 800만 교인을 위한 교회의 실질적인 배려가 필요하다. 개신교회 교인의 죽음과 장례문화에 관한 진지한 논의가 필요하다. 만일 교회에서 장례식을 진행할 수 있다면 다른 교인도 좋아하지 않을까. 교회가 교인의 마지막 길까지 책임져주면 더 좋지 않겠나.
박승배 <교회건축전문가·뉴어프로치건설㈜ 대표이사>
[박승배의 불편한 교회건축 이야기] 교회가 고인의 마지막 길 함께하자
입력 2016-12-09 2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