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부희령] 평범한 삶

입력 2016-12-08 18:41

서울에 유학 가 있던 언니에게 보낼 떡이며 강정을 만드느라 엄니가 밤새 엿을 고았어. 그게 샘이 나서 나도 그런 거 해달라고 뜨거운 방바닥 위를 구르며 떼를 썼지. 내 어머니가 당신의 어머니를 회상하고 있다. 울 엄니는 나보다 언니, 오빠를 더 위했지. 아부지는 안 그랬어. 막내인 나를 유난히 사랑해서 항상 업고 다니셨어. 나는 운전석에서 어머니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내 어머니의 고향은 휴전선으로 가로막혀 갈 수 없는 곳이다. 어머니는 중학생이 될 무렵 삼팔선을 넘어 남쪽으로 내려왔다. 세세한 정황은 잘 모른다. 북한에서 토지개혁을 할 즈음이었으니, 외할아버지가 식솔을 이끌고 야반도주했어야 할 사연이 있을 것이다. 어두운 강을 건널 때, 가슴까지 차오르던 차갑고 세찬 물살과 밤하늘에 울려 퍼지던 총소리를 어머니는 거듭 강조한다. 서울로 내려와서는 가세가 기울어 야간학교에 다니며 낮에는 국회에서 사환으로 일했고, 덕분에 6·25가 터지자 국회의원들을 싣고 가는 열차를 타고 홀로 피난을 갔단다. 부산에서 이모와 지내다가 서울 수복 후 집에 돌아와 보니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며, 어머니는 울먹인다. 전쟁 통에 먹을 게 하나도 없었던 거야.

사는 동안 굴곡과 역경을 겪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다. 누구의 삶도 똑같지 않고, 삶이란 다만 자신에게 특별할 뿐, 그 누구보다 낫거나 못하지 않다는 깨달음과 함께 평범함은 빛나기 시작한다. 타인의 처지를 이해하고 연민하는 힘도 그 지점에서 비롯된다.

손등으로 눈물을 닦던 어머니가 요즘 뉴스에 나오는 일들이 모두 사실이냐고 묻는다. 그이도 좀 가엾잖니. 나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막히는 고속도로의 저 먼 곳을 바라본다. 평생 제 몸을 움직여 돈을 벌어본 적도 없고, 오직 자신만을 위해 울 뿐 타인을 위해 눈물을 흘린 적은 단 한 번도 없을 것 같은 사람을 가엾어 한다. 차 안에 오래 앉아 있어 아픈 무릎을 주무르고 있는 안타까운 나의 어머니가.

글=부희령(소설가), 삽화=공희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