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유럽사회는 1년에 80일 정도의 성일(聖日)이 있었다. 전통사회에서 교회 의례일인 ‘거룩한 날(聖日, holy day)’은 노동을 하지 않고 전례와 함께 공동체 축제를 벌이는 휴일(holiday)이기도 했다.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성일에 고단한 노동의 시간은 멈추고 회상과 환희의 전망이 작동했다. 꿈과 상상이 흐르는 공간에서 사람들은 신앙과 전통을 온몸으로 체험한다.
대림절과 성탄절, 사순절과 부활절 등으로 대표되는 교회력은 크리스마스 트리, 가족모임과 만찬, 선물교환과 이웃 구제, 카니발 등 세시풍속과 같은 명절과 축제가 함께 연결됐다. 전통사회에서 종교 의례와 사회적 놀이가 분리되지 않고 하나의 문화로 나타난 것은 신화적 세계관의 토대에서 불안하고 불평등한 사회체계를 소화하는 유산이었다. 거룩한 날에 함께 소화되던 종교 의식과 사회적 축제는 오늘날에는 건조한 의례와 상업적 행사로 분리됐다. 기술문명을 통해 중세시대의 신화와 상상이 현실로 실현됐기 때문이다.
크리스마스이브의 성탄극과 새벽송이 사라지는 것은 아쉬움의 문제가 아니다. 공동체 행사에 직접 참여하며 집단 구성원 공동의 기억과 전망을 함께 나눌 수 있었던 교회의 정신적 공간, 신앙의례의 시간이 사라져간다는 의미다. 크리스마스를 효과적 마케팅 수단으로만 활용하는 작금의 상업적 발상이 문제가 아니다. 고달픈 일상을 견뎌내고 이를 넘어설 수 있는 공동체적 해학과 반전의 판타지가 없다는 게 바로 현대의 문제다.
16∼17세기 청교도는 크리스마스가 고대 이교도의 동지제(冬至祭)에 기원한 비기독교적 절기라며 철폐한 적이 있다. 그러나 사회의 요구에 밀려 크리스마스 절기가 회복되는데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19세기에 영국 독일 덴마크 등지에서 근대적 방식으로 등장한 크리스마스 문화는 자본주의적 토대에서 이를 적극적으로 재수용하고 발전시킨 미국에서 꽃을 피웠다.
한국교회의 크리스마스는 고종 32년인 1895년 11월 17일(양력 1986년 1월 1일) 태양력 도입이라는 시간체계 변경 덕택에 새로운 명절로 자리 잡았다. 초기 선교사들의 크리스마스는 가족끼리 보내는 휴일 성격이었는데, 1895∼1900년 ‘교회의 날’(기독교를 모르던 사람들이 성탄절에 교회에 구경하러 오는 날)이 됐다. 크리스마스는 사회와 소통하는 선교의 통로였다. 이후 크리스마스는 1930년대 유흥업소와 백화점이 발달했던 서울을 중심으로 교회의 날과 별개로 연말의 유흥과 소비의 날로 굳어졌다. 교회의 전례와 시장의 축제라는 두 가지 저변을 바탕으로 1945년 10월 미군정은 크리스마스를 공휴일로 지정했다. 통행금지가 있던 시대에도 크리스마스 이브와 재야에는 자정이후 통행이 자유로웠다. 크리스마스는 해방과 자유를 누리는 시간으로도 인식된 것이다.
오늘날 전국의 골목마다 예배당은 채워졌는데 사람들은 더 이상 크리스마스에도 교회에 오지 않는다. 크리스마스 이브 통금해제의 해방감도 없다. 서울광장의 성탄트리 점등식은 더 이상 언론의 관심거리가 아니고, 사람들은 백화점의 성탄절 맞이 세일과 이벤트에 눈을 돌린다. 이제 우리는 21세기 자본주의에 길들여진 물질적 생활방식 속에서 크리스마스가 어떻게 가장 중요한 교회의 의례이면서도 사회적 축제가 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옥성삼 크로스미디어랩 원장>
[옥성삼의 일과 안식] 축제의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며
입력 2016-12-09 2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