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효진 사모it수다] 식당봉사, 누구 말을 들어야 하지?

입력 2016-12-09 20:58

벙어리 3년, 귀머거리 3년, 장님 3년이라는 말이 있다. 처음 시집온 며느리의 시댁 생활을 표현한 말인데 세상이 바뀌었다 해도 사모라면 한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교회 현장에서 보고도 못 본 척, 듣고도 못 들은 척, 알아도 모른 척 해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인데 아마 그 중 하나가 교회 식당봉사 자리가 아닐까 싶다. 교회마다 다르겠지만 대개 식당봉사에는 사모와 함께 ‘살림9단’인 노련한 권사님들의 섬김과 손길이 필요하다.

토요일 오후, 주일 점심식사를 준비하는 교회의 식당은 매우 분주하다. 아마도 그 분위기는 명절 음식을 준비하는 시댁의 분위기와 비슷하다. 물론 가장 큰 차이는 시어머니가 한 사람이 아니라는 점이다.

어느 담임목사 사모는 “음식이 많이 남는 날에는 ‘사모가 쓸데없이 손이 크다’ 하고, 음식이 부족한 날에는 ‘넉넉하게 준비 못했다’고 혼이 난다”고 토로했다. 작은 재정에 맞춰 부엌살림을 책임져야 하는 사모의 고충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살림 고수’인 권사님들이 각각 선호하는 요리 스타일이 다르다보니 난처한 상황도 종종 생긴다. 교회에서 김장하던 날 평소 깍두기를 큼지막한 크기로 담그는 것을 좋아하던 A권사님은 사모에게 “크게 잘라야 한다”며 손수 시범을 보여줬다. 알려준 대로 열심히 깍두기 썰기를 하고 있는데 이 모습을 보고 지나가던 B권사님이 “그렇게 크게 썰면 어떻게 하느냐”며 호통을 쳤다. “A권사님이 이렇게 하라고 했다”고 말하면 두 권사님 사이에 오해가 생길 것 같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던 이 사모는 기지를 발휘했다. A권사님이 보면 깍두기를 큼지막하게 썰다가 B권사님이 다가오면 작게 써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얼마 후, 식탁 위에 올라온 개성 있는 크기의 깍두기를 보면서 사모들끼리 한바탕 웃은 것은 당연지사다.

또 음식의 간이 맞지 않을 때 “사모가 맛보고 결정해 달라”며 부르는 경우도 있다. 아무 생각 없이 ‘어느 게 낫다’고 했다가 편을 들었다는 오해를 받아 마음고생을 했다는 사모도 있다.

식당봉사는 작으면 수십명, 많게는 수백명 되는 성도들의 식사를 책임지는 것과 동시에 많은 사람들의 말과 평가를 받는 어려운 자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결같이 그곳에서 헌신하는 권사님들을 볼 때면 사모에게 식당봉사는 배움의 장소이기도 하다.

매년 이맘때쯤 진행되는 특별새벽기도회 기간이 되면 생각나는 권사님이 한 분 있다. 이 권사님은 30년 전 교회개척 시절부터 식당봉사를 담당하셨다. 70세가 넘은 지금까지도 식당봉사를 기쁨으로 섬기고 있다. 새벽기도 기간에는 성도들의 아침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새벽의 매서운 찬바람을 뚫고 가장 먼저 교회 식당에 도착하신다.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해 수고하고 헌신하는 이 권사님의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은 얼마나 기뻐하셨을까.

나 또한 그 권사님을 통해 어떻게 교회를 섬겨야하는지 배울 수 있었다. 요즘같이 추운 날이면 권사님의 시래기 된장국이 몹시 생각난다. 때때로 퍽 곤란한 상황에 처할 때도 있지만 시어머니와 같은 그분들이 있었기에 사모들도 더 많이 성장할 수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박효진 온라인뉴스부 기자 imhere@kmib.co.kr

이 코너는 사모인 박효진 온라인뉴스부 기자가 연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