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자 우병우’는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과 그의 장모 김장자 삼남개발 회장은 7일 열린 국정농단 국정조사 청문회의 핵심 증인이었다. 국회 국조 특위는 오전 10시16분 출석요구서를 수령하지 않은 우 전 수석과 김씨에게 동행명령장을 발부했다.
특위 소속 백장운(34) 입법조사관은 국회 경위 1명과 함께 두 장의 동행명령장을 들고 오전 10시45분 국회를 출발,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한 고급빌라로 갔다. 김씨가 실제로 거주하고 있는 곳으로 알려진 곳이다. 우 전 수석도 여기에 숨어 있다는 제보가 국회에 잇따랐다.
백 조사관은 전날에도 출석요구서를 들고 이 빌라를 찾았지만 경비원에게 서류만 남기고 철수했었다. 출석요구서는 본인에게 직접 전달되지 않으면 효력이 없는데, 우 전 수석이 이를 알고 아예 받지 않는 꼼수를 부린 것으로 보인다.
증인이 출석을 거부하면 국회는 동행명령을 내릴 수 있다. 조사관과 함께 국회로 오라는 ‘명령’이지만 법적 강제력은 없다. 우 전 수석이 문을 안 열어준다면 동행명령장은 한낱 종이에 불과하다. 동행명령장을 받고도 거부하면 국회모독죄가 적용돼 처벌 받을 수 있지만, 우 전 수석은 아예 명령장을 받지도 않고 자취를 감췄다.
백 조사관은 오전 11시45분쯤 빌라 4층에 들어섰다. 초인종을 수차례 누르고 문을 두드려봤다.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공사 중인 맞은편 집에 들어가보니 방이 6∼7칸 있었다. 인부들은 100평 정도 될 거라고 말했다. 어디 구석방에 들어가 있으면 현관까지 소리가 들릴 리 없어 보였다.
낮 12시30분쯤 백 조사관은 누군가와 통화를 하더니 함께 온 국회 경위를 향해 “우 전 수석이 충북에 있는 장모의 언니 집에 있다는 제보가 들어왔다”고 말했다. 조사관 차에 다시 시동이 걸렸다. 기자들이 탄 취재차량 5∼6대도 뒤를 쫓았다. 백 조사관이 떠난 뒤 시민단체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은 이 빌라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꼼수 말고 감옥 가자’는 유인물이 담벼락에 붙었다.
고속도로를 달려 백 조사관의 차량이 멈춘 곳은 충북 제천시 청풍면의 한 주택. 오후 2시50분쯤이었다. 단독주택이 한 채 있었다. 백 조사관은 “김장자의 언니 집이라는데, 오늘 오전 김장자의 차량으로 추정되는 검은색 벤츠를 봤다는 제보가 있었다”고 여기까지 온 이유를 설명했다. 이 집에서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우편함에는 공과금 고지서만 달랑 한 장 들어 있었다. 강제로 집 문을 열고 들어갈 방법이 없었다. 백 조사관은 집을 한 바퀴 돌며 창문을 확인하더니 다시 차에 올랐다.
차는 경기도 화성 기흥컨트리클럽으로 향했다. 우 전 수석이 이곳에 있다는 제보가 있었다. 오후 5시15분쯤 클럽 안 건물에 도착했다. 유리창 커튼 사이로 노트북 컴퓨터 화면의 불빛이 새어나왔다. 먼저 발견한 기자가 외쳤다. “여기 사람 있어요!”
5분쯤 지나 30대로 보이는 한 남성이 문을 열고 나왔다. 별장이 아니라 직원 기숙사라고 했다. 백 조사관이 방 안을 둘러봤지만 우 전 수석은 안 보였다.
백 조사관은 우 전 수석의 자택인 서울 압구정 현대아파트를 한 번 더 확인하고 국회로 돌아갔다. 기자는 마지막으로 논현동 빌라로 향했다. 오후 7시30분이었다. 경비원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4층의 불은 꺼져 있었다. 논현동을 떠나 다시 논현동으로 돌아오는 데 7시간이나 걸렸다. 이동거리는 358㎞.
어쩌면 백 조사관은 이날 우 전 수석이 있는 곳을 찾았을지도 모른다. 다만 확인할 길이 없었다. “동행명령서를 강제할 방법이 없다. 협조해주지 않으면 문을 열고 들어갈 수도 없다. 결국 제보만 확인하다 하루가 다 갔다”고 그는 말했다. 이날 백 조사관의 카카오톡 프로필은 ‘우병우를 찾아라’였다.
김판 기자 pan@kmib.co.kr
“우병우를 찾아라”… 358㎞ 돌고돌아 결국 허탕
입력 2016-12-07 21:45 수정 2016-12-08 0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