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꾸라지 ‘왕실장’… 계산된 ‘무능 전략’?

입력 2016-12-07 17:57 수정 2016-12-07 22:04
7일 국회 최순실 국정조사특위 2차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한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답변하면서 다양한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김 전 실장이 청문회 정회 중 어디론가 전화를 하는 모습. 최종학 선임기자, 김지훈 기자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박근혜 대통령과 관련한 모든 의혹에 “모른다”는 답변으로 일관했다. 비선실세 최순실씨와의 인연도 전면 부인했다. 박 대통령의 두터운 신임을 받아 ‘왕실장’ ‘기춘 대원군’ 등으로 불렸던 실력자의 별명은 허명(虛名)처럼 보였다. 검찰 수사에 대비한 ‘계산된 무능 전략’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김 전 실장은 7일 국회 국정조사특위 2차 청문회 증인으로 출석해 “최씨를 한 번도 만나거나 연락한 적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차은택 CF감독은 “최순실씨가 김 전 실장을 ‘고집이 세다’는 식으로 푸념하는 얘기를 한두 번 들었다”고 증언했다.

차씨는 또 “최씨의 지시로 김 전 실장 공관을 찾아갔다”고 진술하자 김 전 실장은 “대통령이 만나보라고 지시해 10분간 만났다. 제가 직접 연락해 오라고 했다”고 말했다. 그는 “(차 감독이) 뭔가 착각한 건지 모르겠다”고도 했다.

김 전 실장은 “(미르·K스포츠재단 의혹 발생 후) 태블릿PC가 나온 뒤 최씨의 존재를 알았다”고 했다. 또 “제가 최씨를 알았다면 연락을 하거나 통화라도 하지 않았겠느냐. 검찰 조사를 하면 알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자신이 박 대통령의 2013년 7월 30일 ‘저도 휴가’ 때 최씨와 동행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당시 서울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해 수술받고 퇴원한 뒤 집에서 안정을 취했다”고 부인했다.

김 전 실장은 세월호 참사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 의혹’에 대해서도 모르쇠로 대응했다. 박 대통령이 미용사를 청와대로 불러 머리 손질을 했다는 내용에 대해 “몰랐다. 청와대 관저 생활의 사사로운 일은 알지 못한다”고 했다. 대통령의 헤어나 메이크업, 코디 담당자 등을 아느냐는 질문에도 “모른다”고 답했고, 새누리당 황영철 의원은 “딱하다”고 평했다. 황 의원이 “박 대통령의 헤어를 담당한 정모 원장 임명자가 김 실장”이라고 지적하자 “하급직원들이나 정무비서관이 계약하면서 명의는 제 이름으로 나갔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김 전 실장은 세월호 참사 당일 대통령 행적에 대해 “청와대에 있었다고만 알고 있다”고 답했다. 왜 대면보고하지 않았느냐는 질책에 “안보실장이 보고하고 있었고 저희도 서면으로 보고해 (관저로) 올라가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회한이 많다”고 했다.

김 전 실장은 자신의 직권남용 의혹에 대해서도 전면 부인했다. 정유라씨 승마대회 성적 문제로 문화체육관광부 1급 공무원 인사에 개입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 “내가 자르라고 한 일이 없다”고 했다.

고(故)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업무일지(일명 ‘비망록’)에 나온 내용도 모두 부인했다. 김 전 실장 지시사항으로 ‘세월호 시신 인양은 안 된다’고 기록된 것에 대해 “그렇게 지시한 적 없다. 나도 자식이 죽어 있는 상태인데 왜 시신을 인양하지 말라고 하겠느냐”고 반박했다. “작성자의 주관적 생각이 가미될 수 있다” “노트에 나왔다고 제가 다 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등의 해명도 내놨다.

김 전 실장은 헌법재판소의 구(舊)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에 개입했다는 의혹에 대해 “있을 수 없고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라며 “완전한 루머”라고 했다. 일본에서 불법 줄기세포 시술을 했다는 의혹에 대해선 “아들이 몸이 약해 일본에서 면역 치료를 (받았다). 줄기세포 치료를 받은 것이 아니다”고 반박했다.

김 전 실장이 부인을 거듭하자 민주당 안민석 의원은 “오리발 실장이다. 나중에 부인도 모른다고 할 사람”이라고 했다.

전웅빈 기자 imung@kmib.co.kr, 사진=최종학 선임기자, 김지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