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죽음을 바라는 주인공을 둘러싼 모험 소설

입력 2016-12-08 18:51 수정 2016-12-13 18:42
호기심이 발동했다. ‘우국’의 작가인 일본 미시마 유키오(1925∼1970·사진)의 책이라니. 지난해 한국문단을 강타한 표절 논란으로 우리 많은 작가들이 그의 문장에 매혹됐음이 폭로되지 않았던가.

장편소설 ‘목숨을 팝니다’(예문아카이브)는 그러나 전후 일본문학을 대표하는 탐미주의 작가의 작품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오락성이 강하다. 작가는 이를 ‘사이키델릭(psychedelic·환각상태) 모험소설’이라고 명명했다.

광고회사 직원 야마다 하니오는 성공한 직업인이지만 삶의 의미를 느끼지 못한다. 어제 같은 오늘에 질린 그는 죽기로 결심한다. 시도가 실패하자 신문광고를 낸다. ‘목숨을 팝니다. 원하시는 목적에 사용하십시오. 27세 남자, 비밀보장.’

이후 집 앞에는 상상초월의 목적으로 그의 목숨이 필요한 사람들이 찾아온다. 이를테면 바람 난 20대 아내를 꼬드겨 그녀의 정부인 범죄조직 보스의 총에 죽어달라고 주문하는 70대 노인, 생체실험 대상이 돼 달라고 찾아온 도서관 사서, 뱀파이어처럼 피를 빨아먹는 엄마에게 피를 제공해달라는 고등학생…. 하지만 번번이 주인공은 살아나고 그와 엮였던 여성들은 죽음을 맞는다. 그런데 이번에는 스토커 같은 여성이 찾아온다. 그녀가 자신과 함께 죽어달라고 매달리자, 그에겐 살고자 하는 욕망이 스멀스멀 기어오르는데….

소설은 죽음을 바라는 주인공을 둘러싼 해프닝과 로맨스, 독창적인 묘사, 번득이는 상상력이 빚어낸 반전의 재미가 넘쳐난다. 자위대의 궐기를 촉구하는 연설을 한 후 할복자살한 극우문인의 작품이라 믿기 어려울 정도로 괴기함과 허무함, 코믹함과 오락적 요소가 묘하게 섞였다.

“언제나 이렇게 무슨 일이 벌어지기를 기다린다. 그것은 ‘산다는 것’과 비슷하지 않은가. 도쿄 애드에 다니던 시절, 모던하고 밝은 오피스에서 다들 유행하는 양복을 차려입은 모습으로 손을 더럽히지 않는 일만 하던 나날이 훨씬 더 죽음에 가깝지 않았을까.”(107쪽)

이 소설은 1968년 플레이보이 잡지에 연재한 뒤 출간됐지만 ‘금각사’ ‘가면의 고백’ 등 문학성 짙은 작품과 달라 50년 가까이 묻혀 있었다. 그러다 지난해 일본에서 재출간돼 폭발적 인기를 끌었다. 무기력하고 고독한 현대 젊은이들의 심연에 자리 잡은 살고자 하는 욕구. 이를 문학성과 오락성을 두루 갖춘 이 소설이 건드려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