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권력의 막장 보여준 김기춘·우병우·김종

입력 2016-12-07 17:28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진상 규명을 위한 국회 국정조사특별위원회 2차 청문회가 7일 열렸다. 이날 청문회는 ‘최순실 없는 최순실 청문회’ ‘반쪽 청문회’였다. 핵심 증인인 최순실씨가 재판이 진행 중이라는 점과 건강상 이유로 출석하지 않았고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도 교묘한 꼼수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출석 대상 증인 27명 중 14명만 참석한 것이다. 국회 차원의 진실 규명이라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지 벌써 우려가 나온다.

핵심 증인들이 줄줄이 불출석했음에도 국민적 관심은 6일 열린 대기업 그룹 총수들의 1차 청문회 못지않았다. ‘왕실장’으로 불렸던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체육계를 좌지우지했던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 최씨의 측근인 차은택 전 창조경제추진단장과 고영태씨가 증인석에 앉았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에 관한 여러 의혹과 최씨 일가의 국정농단이 어느 정도 밝혀질지 국민의 눈과 귀가 이들의 일거수일투족에 쏠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한가닥 기대는 실망과 분노로 바뀌었다. 앵무새처럼 내뱉는 “사실이 아니다”에 국민들은 한숨을 내쉬었고 “모른다” “기억나지 않는다”에는 울분을 토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질의는 김 전 실장에게 집중됐다. 여야를 가리지 않고 그를 향해 박근혜 대통령의 세월호 참사 당시 7시간 논란 등 각종 의혹에 대해 때로는 고성을 지르고 날 선 비난을 쏟아내며 추궁을 거듭했다. 그는 보좌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지적에 대해선 “죄송하다”고 납작 엎드렸지만, 제기된 각종 의혹에 대해선 ‘모르쇠’로 일관했다. 법률가로서의 전문지식을 악용해 면피에만 몰두한 것이다.

오죽했으면 특위 위원 한 명이 “김기춘 증인 당신은 죽어서 천당 가기 쉽지 않을 것 같다”고 일갈했겠는가. 김 전 실장은 비서실장 재직 때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던 실세 중 실세였다. 그가 야당 공세의 표적이 되면 박 대통령이 온몸으로 막아줄 정도로 각별한 신임을 받았던 인물이다. 사법적 판단은 차치하고라도 최씨의 국정농단에 일말의 책임이 있다는 얘기다. 미꾸라지처럼 이리저리 빠져나갈 궁리만 하지 말고 진실을 밝히길 바란다.

박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에서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면서 주변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것이 큰 잘못이라고 했다. 정작 그 주변 사람들은 자신들은 책임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통령이나 측근 서로 잘못을 떠넘기고 있는 꼴이다. 이러니 최순실이라는 일개 사인(私人)이 민간 기업은 물론 국가 공조직까지 광범위하게 농락할 수 있었던 것 아닌가 싶다. 대통령을 포함해 이들이 맡은바 직분을 다했다면 국정농단 사태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번 사태를 교훈삼아 망가진 국가 시스템을 바로 세워야 한다. 그래야 대한민국이 다시 정상 궤도에 진입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