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장년층은 가수 정훈희(64)를 ‘안개’ ‘꽃밭에서’ ‘무인도’를 부른 가수로 기억할 것이다. 하지만 젊은층에게 유명한 그의 노래는 따로 있다. 바로 윤상 4집(2002)에 수록된 ‘소월에게 묻기를’. 정훈희 특유의 청아하면서도 호소력 짙은 음색이 돋보이는 이별 노래다. 발표 당시 잔잔한 반향을 일으킨 이 곡은 2011년 한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경연곡으로 불려져 관심을 끌기도 했다.
최근 서울 여의도 한 카페에서 만난 정훈희는 ‘소월에게 묻기를’을 언급하자 열없는 미소부터 지었다. “녹음할 때 윤상한테 그랬어요. 모든 걸 덜어내고 탈진한 사람처럼 노래하겠다고. 아마 젊은 가수라면 그렇게 못 불렀을 거예요. 모든 걸 내려놓고 노래한다는 게 무엇인지 모를 테니까요.”
정훈희는 요즘 특별한 공연을 계획하고 있다. 오는 17∼18일 서울 성동구 소월아트홀에서 개최하는 콘서트다. 내년이면 데뷔 50주년을 맞는 그는 공연에서 자신의 50년 노래 여정을 정리한 무대를 선보일 예정이다. 남편인 가수 김태화(66), 후배 가수 박상민(52) 등도 게스트로 나선다.
“데뷔 50주년을 앞두고 큰 공연장에서 콘서트를 할 수도 있었겠죠. 하지만 팬들에게 가깝게 다가가고 싶더군요. 그래서 500석 규모의 공연장에서 소박한 콘서트를 열게 됐어요. 어떻게 하면 예쁘게 늙어갈 수 있을지 팬들과 수다도 떨면서 좋은 음악도 들려드리는 공연이 될 겁니다.”
정훈희가 가요계에 데뷔한 건 그의 나이 겨우 열여섯 살이던 1967년이었다. 여고생이었던 정훈희는 여름방학을 맞아 부산에서 상경해 작은아버지가 악단장으로 있던 서울 중구의 한 나이트클럽을 찾았다. 어린시절부터 노래 실력이 특출했던 그는 무대에 올라 팝송을 불렀는데, 유명 작곡가 이봉조(1931∼1987)가 이 노래를 우연히 들었다. 이봉조는 단박에 정훈희의 목소리에 반하고 말았다.
결국 이봉조는 자신의 곡 ‘안개’를 선물했고, 정훈희는 이 노래로 스타덤에 올랐다. 70년대에 그는 도쿄국제가요제 칠레국제가요제 등 해외 유수 가요제에서 수많은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하지만 75년 대마초 파동에 휘말려 활동을 접었고, 80년대가 돼서야 ‘꽃밭에서’로 재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
만약 49년 전 나이트클럽 무대에서 이봉조를 만나지 않았다면 그의 삶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정훈희는 이런 질문에 “그래도 가수가 됐을 것”이라며 “가수는 내 운명”이라고 잘라 말했다.
데뷔 50주년을 맞는 내년에는 신보도 발표할 계획이다. 새 음반에 수록될 모든 곡은 남성 가수와의 듀엣곡으로 채울 예정이다. 정훈희는 “배우 박보검을 정말 좋아한다. 기회가 된다면 박보검과 부른 노래를 음반에 싣고 싶다”며 미소를 지었다. “미소가 예쁜 할머니가 되고 싶어요. 10년쯤 흐른 뒤에도 팬들로부터 ‘어쩜 그리 고우세요’라는 말을 듣는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거 같아요(웃음).”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미소가 예쁜 할머니 되고 싶어요” 내년 데뷔 50주년 앞두고 콘서트 여는 정훈희
입력 2016-12-09 0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