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기자들이 숙명처럼 받아들이는 일 중 하나는 자신을 ‘기레기’로 호칭하는 독자들의 반응이다. 기레기란 ‘기자’와 ‘쓰레기’의 합성어다. 인터넷 위키백과는 자극적이고 부정적인 제목과 내용으로 저널리즘의 수준을 현저하게 떨어뜨리고 기자로서의 전문성이 상당히 떨어지는 사람과 그 사회적 현상을 지칭한다고 설명한다.
지난 몇 년간 기레기는 본연의 의미와 상관없이 기자를 가리키는 일반명사처럼 사용됐다. 어떤 기사를 쓰든 기레기라는 호칭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다. 여당을 비판하든 야당을 비판하든, 혹은 기사 내용이 정치적이든 아니든 간에 기자는 그냥 기레기로 취급됐다. 자신의 의견과 다른 보도를 하면 기레기라고 비난하는 이도 많았다. 그런데 몇 달 전부터 기레기라는 말이 잘 눈에 띄질 않는다.
15년여 사진기자로 일한 후배는 “최근 촛불집회 취재만큼 시민들이 언론에 우호적이었던 적이 없다”고 했다. 일반인과의 구분이 힘든 소위 ‘펜기자’와 달리 사진기자나 카메라기자는 쉽게 신분이 드러나기 때문에 시민들의 반응을 온몸으로 체험한다. 후배 사진기자는 “가끔 취재할 때 ‘수고한다’며 건네는 캔음료를 받아본 적은 있지만 거리에서 껍질을 깐 귤을 입에 넣어주는 시민을 만난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다.
매서운 바람이 몰아치는 거리에 앉아 사진을 전송하는 기자에게 껍질 깐 귤을 건네는 시민의 모습을 떠올리는 것은 왠지 눈물겹다. 매일 사고치고 다니며 꾸중 듣던 막내가 모처럼 무언가를 해낸 뒤 아버지께 칭찬 듣는 모습이랄까.
사실 최순실 일가의 국정농단을 밝혀낸 건 검찰의 수사가 아니었다. 면책특권을 활용한 야당 의원의 폭로도 아니었다. 오직 언론의 사실 보도가 국정농단의 실체를 만천하에 드러냈다.
최근 몇 달간 언론은 경쟁사의 보도를 애써 무시하던 과거 관행과 달리 경쟁사의 보도까지 적극 인용하면서 그 바탕 위에 새로운 사실을 발굴해냈다. 미리 조율한 바 없으나 내가 못한 건 경쟁자의 도움을 받고, 경쟁자는 내가 밝힌 것을 바탕으로 한 발짝 더 앞으로 나갈 수 있었다.
국민에게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보도도 많지만 그 보도들로 인해 많은 사실이 밝혀졌고, 그렇게 밝혀진 사실들 덕분에 국민들의 공분을 일으키는 큰 뉴스가 탄생할 수 있었다.
오늘 언론에 향하고 있는 칭찬과 격려의 상당 부분은 정권의 서슬이 퍼렇던 2년여 전 ‘정윤회 문건’을 처음 보도했던 기자들에게 돌아가야 할 것이라 믿는다. 그 기자들은 취재원을 지키기 위해 개인적 불이익을 감수했고, 그럼에도 취재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등의 안타까운 현실을 눈으로 지켜보며 감내해야 했다. 국정농단의 전모를 밝혀내는 데 그들의 노력은 버팀목이 됐다.
기자와 찍은 사진이나 로고가 새겨진 방송사 장비 차량 앞에서 찍은 인증샷을 SNS에 올리는 이들의 모습을 이젠 흔히 본다. 대학가에서는 저널리즘 관련 강의에 청강생이 대폭 늘어났다는 소식도 들린다. 최종 면접 전형이 남아있는 국민일보 수습기자 모집 과정도 뜨거웠다. 아이돌그룹 마마무의 춤과 노래에 흠뻑 빠져있는 아이도 아빠의 직업에 대해 관심을 표시하는 횟수가 늘었다.
언론에 대한 관심의 증가를 체감하면서 이 기회를 스스로 돌아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다짐을 거듭하게 된다. 따지고 보면 기레기라는 단어는 기자들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다. 기레기라는 단어의 홍수 속에서 파묻혀 살 것인지 아니면 국민들이 껍질 깐 귤을 입에 넣어주는 세상에 살 것인지를 선택하는 건 결국 스스로의 몫이다.
정승훈 온라인뉴스부장 shjung@kmib.co.kr
[데스크시각-정승훈] 다시 ‘기레기’를 생각한다
입력 2016-12-07 17: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