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국정농단’ 의혹 사건과 관련한 국회 국정조사에 증인으로 출석한 대기업 총수들은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에 ‘대가성이 없었다’고 한결같이 입을 모았다. 대신 협박 내지 강요에 따른 피해자라는 입장을 내세웠다. 문화융성과 국가를 위한 공적인 사업이라고 믿고 추진해왔다는 박근혜 대통령 주장과 손뼉을 마주치듯 닮은꼴 발뺌인 셈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두 재단 출연이 ‘삼성그룹의 안정적인 승계와 이 부회장의 경영권 확보를 위한 대가성이 있다’는 새누리당 이만희 의원 지적에 “(삼성은) 단 한 번도 뭘 바란다든지 반대급부를 바라면서 출연하거나 지원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은 다른 의원 질의에도 “모든 사회공헌이든 출연이든 어떤 부분도 대가를 바라고 하는 지원은 없다”고 강조했다.
이 부회장은 다만 박근혜 대통령으로부터 재단 관련 지원 요청을 받은 적은 있다고 인정했다. 그는 박 대통령과 지난해 7월과 올 2월 두 차례 독대한 사실을 인정하고 “(박 대통령이) 문화융성, 스포츠 발전을 위해 기업들도 열심히 지원해주는 게 경제 발전, 관광산업 발전을 위해 좋은 일이라고 아낌없이 지원해달라는 말이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과 지난해 7월 가진 독대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이후 일이라 합병 관련 얘기는 없었다고 덧붙였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두 재단 출연이 자발적이었느냐는 질문에 “기업별로 할당받은 만큼 낸 것”이라며 “대가성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출연한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롯데가 K스포츠재단에 지난 5월 추가로 70억원을 제공한 것은 ‘면세점 사업 및 검찰 수사와 관련한 것 아니냐’는 문제 제기에 “전혀 관계 없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기업 입장에서 청와대의 재단 출연 요청을 거부하기 어려웠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전국경제인연합회장 자격으로 출석한 허창수 GS그룹 회장은 “미르·K스포츠재단 관련 청와대의 (출연) 요청을 기업이 거절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도 “당시 그런 청와대의 지시와 요청을 거절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생각한다”고 답변했다.
대기업 총수들이 미르·K스포츠재단 자금 출연에 대가성을 부정할 것이라는 점은 어느 정도 예상된 상황이었다. 자금 출연 이면에 기업 합병, 사면 등 청와대와의 거래를 인정할 경우 대기업 총수들에게도 뇌물공여 혐의가 적용돼 처벌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두 재단의 대기업 자금 출연과 관련해 박 대통령의 뇌물죄 혐의 수사를 공언한 박영수 특별검사 입장에서는 뇌물 공여 혐의를 입증할 물증 확보가 향후 핵심 과제로 떠오를 전망이다.
박 특검은 이날 서울 서초구 법무법인 강남 사무실에서 청문회를 시청하며 향후 조사할 기업 총수들의 답변 모습을 지켜봤다. 박 특검은 다만 ‘기업들은 대가성이 없다고 하고 있다는데 어떻게 보느냐’ ‘수사에 참고할 예정이냐’ 등 질문에는 “언급을 하지 않겠다”며 답변을 피했다.
노용택 기자 nyt@kmib.co.kr
노련한 재벌들… 예상대로 “우린 피해자”
입력 2016-12-06 18: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