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측불허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행보가 이념이 흐려진 새 시대, 이른바 ‘포스트 이데올로기 시대(Postideological era)’를 열었다고 평가받고 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5일(현지시간) “트럼프가 보여준 인사나 주장, 정책에서 뚜렷한 이념이나 성향을 발견하기 어렵다”며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포스트 인종차별 시대(Postracial era)’로 안내했다면 트럼프는 이념이 모호한 ‘포스트 이데올로기 시대’를 열었다”고 분석했다.
‘포스트 이데올로기 시대’는 트럼프 측 여론조사 전문가였던 토니 파브리지오가 최근 매사추세츠주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주최로 열린 콘퍼런스에서 “전통 이데올로기 렌즈로 트럼프를 볼 수 없다. 그는 포스트 이데올로기적”이라고 설명한 데서 비롯됐다. WSJ는 “만일 ‘트럼프 이데올로기’가 있다면 그것은 단순히 힘을 과시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기존 이데올로기 잣대로 해석하기 어려운 면은 선거 결과에서부터 드러났다. 트럼프는 민주당 지지기반인 블루칼라의 표에 힘입어 당선됐고 공화당 진영인 경영자들에게선 외면받았다.
트럼프는 포퓰리스트도 아니고 기존 보수 성향의 공화당 멤버도 아니다. 그럼에도 인종차별주의 논란을 빚는 극우주의자 스티브 배넌을 백악관 수석전략가 겸 고문으로 지명한 것은 포퓰리스트로서의 트럼프를 보여준 대표 사례로 거론된다. 마이크 폼페오(캔자스) 하원의원을 중앙정보국(CIA) 국장에, 제프 세션스(앨라배마) 상원의원을 법무장관에 발탁한 것에선 강한 보수적 면모를 엿볼 수 있다. 그러면서도 월스트리트 배경을 가진 스티븐 너친을 재무장관으로 임명한 것은 과거 대통령들의 관행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 WSJ의 설명이다.
천차만별인 차기 내각의 성향에서도 이 같은 다양성을 확인할 수 있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 당선인과 보건복지부 장관에 내정된 톰 프라이스는 정통 보수주의자로 자유경제를 신봉한다. 하지만 상무장관에 발탁된 윌버 로스는 산업 보호를 최우선으로 두고 정책을 활용하는 보호주의적 방법을 고민한다. 아울러 오바마 케어(건강보험개혁법안) 폐지를 최우선 정책과제에 거론하는 등 정부의 과도한 개입을 경계한 트럼프도 에어컨 제조업체 캐리어의 해외 공장 이전 앞에선 정부의 힘을 ‘고전적’으로 사용했다.
외교정책에서도 일관성을 찾기 힘든 건 마찬가지다. 트럼프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며 정통 보수주의자들을 경악하게 하는가 하면 차이잉원 대만 총통과 37년 만에 통화하면서 ‘하나의 중국’ 원칙을 가볍게 무너뜨렸다. 이 같은 모습에 대해 뉴트 깅리치 전 하원의장은 “트럼프가 자기 색깔의 정책을 펼칠 것임을 보여준 신호”라고 해석했다.
WSJ는 차기 트럼프 행정부에 대해 “추측하기 어렵다. 좌와 우, 진보와 보수의 개념이 우리 앞에 뒤섞이듯(Scrambled)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김미나 기자 mina@kmib.co.kr
트럼프주의, 포스트이데올로기 시대 열다
입력 2016-12-07 0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