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청와대에서 100m가량 떨어진 효자치안센터 앞. 시민들은 경찰 차벽을 향해 국화 수십 송이를 던졌다. 시민들은 ‘민주주의가 죽었다’고 외쳤다. 행진을 가로막는 경찰에 대한 항의 표시였다. 시민들은 청와대로 향하는 길목을 막아선 경찰이 야속하다고 했다. 차벽에 부딪힌 국화는 의경들의 헬멧 위로 떨어졌다. 의경들은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았고 표정 변화도 없었다. 청와대를 등진 채 촛불을 바라봐야 하는 경찰들의 속마음은 어땠을까.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촛불을 마주하고 있는 의경들의 속마음은 복잡하다. 추운 날씨에 오랜 시간 대기하느라 몸은 힘들지만 그렇다고 집회 참가자들을 탓할 수도 없다. 지난달 말 전역한 의경 A씨(24)는 “보통 집회 관리에 나가면 의경들이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에는 분위기가 다르다”고 했다. 그는 “몸이 조금 힘들어도 집회 참가자들을 향해 ‘싫은 소리’ 한마디 하는 사람 없었다. 의경들도 집회 참가자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의경들은 경찰의 치안 업무를 보조하며 국방의 의무를 대신한다. 21개월 복무기간을 마치면 다시 사회로 돌아와 시민이 되고 대학생이 된다. 매주 촛불집회 현장에 나가고 있는 현역 의경 B씨(22)의 마음도 또래 친구들과 비슷하다.
B씨는 “우리 의경들도 일반 시민들처럼 국정농단 사태를 바라보면서 매일 분노하고 있다”며 “하지만 의경으로서 명령에 따라 방패를 들고 서 있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어 “평화 집회를 이끌어주는 시민들께 감사하면서도 마음 한편으로는 길을 막고 있을 수밖에 없어 죄송한 마음이 든다”고 털어놨다. 휴가나 외박 때 친구들과 촛불집회에 참여하는 의경도 있다고 했다.
현역 의경 C씨(21)는 “너무 많은 사람이 거리에 나와 무슨 일이 벌어지지는 않을까 걱정되지만 사람들이 매주 거리에 나오는 이유도 이해된다”며 “최대한 시민들과의 마찰을 피하고 싶다”고 했다.
직업 경찰관들도 마음속으로는 촛불을 하나씩 밝히고 있다. 두 차례 촛불집회 관리에 참여했던 D경위(30)는 “사상 최대 규모의 집회가 평화적으로 열리는 역사적인 현장”이라고 이번 촛불집회를 평가하면서 “경찰도 시민이다. 경찰 내부 분위기 또한 여론조사 결과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전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쉬는 날 조용히 촛불집회에 참여하는 경찰도 꽤 많다고 한다. 경찰의 집회 참가는 조직 내에서 ‘공공연한 비밀’ 수준이다. 혹시나 아는 경찰을 만날까봐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거나 경찰과 마주치지 않기 위해 행진 대열 뒤쪽에 머무른다고 했다.
‘촛불민심’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박근혜 대통령과 정치권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E경사(34)는 “워낙 황당한 일들이 일어나니 시민들이 거리로 나올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면서 “박 대통령이 계속 버티고 탄핵안이 부결돼 집회가 과격해지면 결국 피해를 보는 건 경찰과 시민이다. 시민들과 맞서야 하는 상황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김판 기자 pan@kmib.co.kr, 삽화=이은지 기자
“우리라고 다를까요… 고맙고 죄송” 휴무일 촛불 드는 경찰관들
입력 2016-12-07 04: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