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박정희까지 ‘분노의 화살’

입력 2016-12-07 00:02
서울 영등포구 문래근린공원에 설치된 박정희 흉상에 5일 오전 누군가 붉은 스프레이를 뿌리고 ‘철거하라’는 글자를 남겼다.
6일 오전 10시30분 서울 영등포구 문래근린공원. 산책을 나온 한 주민은 붉은색으로 범벅이 된 흉상에 화들짝 놀랐다. 공원 한쪽에 세워진 박정희 전 대통령의 흉상이 온통 붉은색이었다. 전날 누군가가 빨간 스프레이로 흉상을 훼손했다. 좌대에는 ‘철거하라’는 문구도 쓰였다. 이 흉상이 훼손된 건 지난 2000년 민족문제연구소 등이 철거를 시도하다 코 부분이 깨진 이후 16년 만이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장기화되면서 국민의 분노는 박 전 대통령까지 향하고 있다. 국정농단 사태와 더불어 국정 역사 교과서와 대대적인 추모사업 등 박정희 미화사업이 국민들의 반발을 부르는 요인으로 보인다. 지난 1일 경북 구미시의 박 전 대통령 생가가 불에 탔는가 하면, 지난달 4일에는 생가 인근 동상에 한 대학생이 ‘독재자’라고 낙서해 경찰에 붙잡히기도 했다. 18일에는 대구 중구 동성로에 있는 ‘박근혜 대통령 생가 터’ 표지판에 누군가가 빨간 칠을 해 표지판이 철거됐다. 한 달 사이 전국 곳곳의 박 전 대통령 ‘부녀(父女)’의 상징물은 성난 민심에 수난을 겪고 있다.

대구 경북도 예외가 아니다. ‘박정희 탄생 100주년’이 되는 내년 대대적인 추모 사업을 계획하고 있는 이 지역에서는 우상화라는 반발도 커지고 있다. 100주년 사업을 포함한 일명‘박정희 예산’은 정부 몫 47억원을 포함해 모두 100억원이 넘게 책정돼 있다.

최인협 구미참여연대 사무국장은 “경제상황도 나쁜데 적지 않은 예산을 박정희 기념사업에 쓴다니 시선이 안 좋다”며 “박 전 대통령 고향이니까 제사 지내는 것까지는 알아서 하라는 부분이지만 세금으로 건물을 짓고 기념사업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여론이 형성되고 있다”고 전했다. 장지혁 대구참여연대 정책팀장도 “박정희 우상화는 구미에서 제일 심한데 국정농단 사태가 커지면서 반대여론도 비등해지는 추세”라며 “새마을운동 관련 사업도 실제로는 박정희 미화사업이어서 시민단체들이 반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구미시의 내년도 박정희 기념사업 예산은 10억5000만원이다. 그나마 시민단체의 반발로 줄인 규모다. 박정희 사진 전시회에 연극 제작, 100주년 기념식, 박정희 재조명 학술대회 등에 쓸 계획이다.

새마을운동 관련 사업까지 포함하면 들어가는 세금 규모는 1000억여원으로 훌쩍 커진다. 구미시에서는 새마을운동 기념사업을 추진하고 있는데, 내용을 들여다보면 사실상 박 전 대통령 기념사업이다.

박 전 대통령 생가 인근에 짓고 있는 새마을운동 테마공원이 대표적인 사례다. 2014년부터 현재까지 약 870억원의 국·도·시비를 들였다. 내년 완공까지 시비 17억원, 도비 29억원, 국비 47억원을 더 써야 한다. 장 정책팀장은 “연간 1조원 규모인 구미시 재정을 감안하면 800억원 이상의 예산을 쓴다는 건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미 무용지물이 되다시피 한 선례도 있다. 지난 2008년 건립된 경북 새마을회관은 당시 경북도와 구미시가 110억원을 들여 지었다. 완공 이후 찾아오는 이들도 기대에 못 미치고 임대 사업도 부진해 결국 지난해 6억원을 들여 웨딩홀로 건물 일부를 개조했다.

전국에 박정희 흉상이 너무 많다는 불만도 나온다. 지난 2011년 박 전 대통령 생가 인근에 들어선 동상에는 국민성금 등 12억원이 쓰였다. 새마을운동의 발상지인 경북 청도군은 신도마을에 동상을 포함한 새마을운동 기념사업에 45억원의 예산을 쏟아부었다. 올해 청도군의 재정자립도는 9%에 불과하다.

경기도 성남시의 새마을운동중앙연수원과 서울 영등포구 문래근린공원에 흉상이 있다. 박 전 대통령이 다녔던 구미초등학교, 서울 성북구의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도 동상이 있다.

영등포구에선 흉상철거를 위한 주민대책위원회가 만들어져 이달부터 온·오프라인 서명 운동을 시작했다. 대책위 관계자는 “집회 현장에서 2000여명의 서명을 받았고 온라인으로 1252명이 참여했다”며 “서명을 모아서 구청장과 철거를 논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글·사진=최예슬 기자 smar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