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선 한국경제, 성장우선주의 버려라 (중)] 위기일수록… ‘지도에 없는 길’ 걸어가야

입력 2016-12-06 19:21 수정 2016-12-06 21:09

역대 정부는 대부분 집권 4년차에 비해 5년차 때 경제성장률이 하락하는 ‘레임덕 징크스’를 겪었다. 연초부터 대선 정국이 펼쳐지는 집권 5년차는 경제 여건의 불확실성이 상승하고, 공직사회의 무사안일주의가 최고조에 달하는 시기다. 박근혜정부도 집권 5년차를 눈앞에 두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을 2.7%, 내년은 2.6%로 보고 있다. 이대로라면 현 정부가 최악의 레임덕 징크스를 겪을 것이라는 전망이 파다하다. 민간에선 내년 한국경제가 1%대 저성장을 보일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때문에 비록 집권 말이지만 강력한 리더십으로 무장한 경제사령탑이 주도하는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는 제언이 잇따르고 있다.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014년 취임 일성으로 “지도에 없는 길을 가겠다”고 밝힌 바 있다. 가구 소득과 소비를 늘려 경기를 부양한다는 정책 방향을 제시했지만 결과는 가계부채만 늘렸다는 혹평을 받고 있다. 당시 ‘초이노믹스’(최 전 부총리 경제정책)는 해내지 못했지만 이제는 진짜 지도에 없는 길을 가야 할 때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우리 경제가 처한 대내외 현실이 위급한 만큼 집권 1년차 때의 긴장감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는 얘기다.

가계의 가처분소득을 올리고 소비를 활성화하기 위한 대책 중에서는 보편적으로 돈을 직접 지원하는 복지가 대안으로도 거론된다. 한양대 하준경 교수는 “돈을 지급해 국민의 소득을 직접 올려주는 정책은 오히려 복지에 대해 정부가 세세하게 개입할 필요가 없도록 해서 재원 배분의 왜곡 현상을 줄일 수 있다”며 “적극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6일 OECD 사회복지 지출 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한국의 올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사회복지 지출 비중 추산치는 10.4%로 35개 회원국 가운데 34위다. 특히 한국은 노령연금, 육아휴직급여 등 현금급여 비중이 낮은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해 한국의 GDP 대비 현금급여 비중은 3.9%로 역시 35개국 중 뒤에서 두 번째였다. 반면 사회복지 서비스 비용의 경우에는 GDP의 5.8%를 쓰는 것으로 집계돼 그나마 30위였다.

전 세계 91개국에서 저출산 대책으로 시행 중인 아동수당제는 자녀 수에 따라 매달 일정 금액을 정부가 직접 지원해주는 제도다. 아동수당으로 전체적인 소비가 늘어나는 효과가 있고, 관련 산업의 생산·고용효과가 크다는 분석도 있다. 프랑스의 경우 20세 미만을 기준으로 자녀 2명까지 한 명당 월 129유로(약 16만원), 3명인 경우 295유로를 지급한다. 독일은 18세 미만 아동에게 한 명당 월 184유로를 주고 3명은 190유로, 4명 이상부터는 각 아동에게 215유로를 지급한다. 한국은 6세 미만 아이를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보내지 않을 때만 제한적으로 양육수당이라는 명목의 돈을 받는다.

일본정부는 2018년부터 저소득 가구 대학생을 대상으로 매월 3만엔(약 31만원)의 학자금을 지급할 예정이다. 어려운 가계상황 때문에 진학을 포기하도록 하지 않겠다는 취지다. 상환할 필요가 없는 돈으로 일종의 청년수당인 셈이다. 우리는 서울시가 청년활동지원비 정착을 추진했지만 정부가 제동을 걸면서 법정 공방을 벌이는 중이다.

일부 국가에서는 모든 국민에게 일정 수준의 소득을 무조건적으로 지급하는 기본소득제에 대한 논의도 진행되고 있다. 현재 미국의 알래스카 정도가 막대한 석유자금을 바탕으로 완전한 수준의 기본소득제를 도입한 것으로 평가된다.

다만 정부는 돈을 주는 복지를 확대하는 방향에 대해 충분한 국가재정이 먼저 뒷받침돼야 하고, 이 때문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국민의 소득을 직접 올려주는 정책은 재정 규모가 충분한 일부 지자체 차원에서 시도해볼 수 있겠지만 전국 단위 시행은 아직 불가능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또 직접 지원하는 복지를 전격적으로 도입하기에 앞서 소득분배 정책부터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홍익대 전성인 교수는 “직접 복지는 일반적인 소득 분배보다 논란의 여지가 훨씬 크다”면서 “중산층과 저소득층을 위한 정책을 통해 가계부채 증가 없이 소득 증가가 소비 증가를 가져오는 성장 방식을 먼저 택해보고, 그 뒤 수당 지급식 복지를 검토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했다.

세종=유성열 기자 nukuva@kmib.co.kr, 일러스트=공희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