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변명 청문회’로 정경유착 끊을 수 있겠나

입력 2016-12-06 17:43 수정 2016-12-06 20:52
6일 국회에서 열린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청문회를 지켜본 국민들의 심정은 착잡하다. 삼성 현대차 SK LG 등 내로라하는 대기업 총수들이 모두 불려나왔다. 재계 총수들이 한꺼번에 국회 청문회 증인석에 앉은 것은 1988년 5공 청문회 이후 28년 만에 처음이다. 권력과 금력의 유착이 여전하다는 방증이다. 더욱이 이들은 국정 최고책임자인 대통령과의 검은 거래를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상태다. 청문회 증인의 면면을 보면 과연 세계 12위권 경제 규모를 가진 나라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어쩌다 이 지경까지 오게 됐는지 한심하다 못해 억장이 무너진다.

증인으로 출석한 그룹 총수들은 한결같이 강제성은 시인한 반면 대가성을 부인했다. 하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믿을 국민은 많지 않다. 재계가 권력에 부역하는 대신 사업적 이득을 챙겼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재벌도 공범’이라는 촛불집회의 함성이 한낱 구호가 아니라 국민들의 인식이 그렇고, 실제로도 그러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우리 생각이다. 청와대의 기금출연 요청을 거부하기 어려웠다는 주장은 기금 출연을 거부했을 때 예상되는 불이익을 피하기 위한 소극적 방조행위였다는 말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기회 있을 때마다 고통이 따르더라도 진실규명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고, 그런 관점에서 이번 청문회도 지켜봤으나 솔직히 실망스럽다. 일부 의원들은 자기 할 말만 하고 증인에게 답변할 기회를 제대로 주지 않아 진실 접근을 차라리 방해했다. 또한 그동안 제기된 의혹 수준의 질문을 하는 등 준비 부족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일부이긴 하나 호통을 치는 등 한건주의식 청문을 하는 의원도 없지 않았다. 청문회가 진실규명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흘러간 측면은 아쉬운 대목이다. 이래선 정경유착을 끊을 수 없다.

증인들 역시 예상한 대로 모르쇠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일관했다. 증인들 입장에서 욕 먹는 청문회가 고통스럽다는 건 이해한다. 그렇더라도 권력의 비선실세가 어떻게 국정에 개입했고, 이 과정에서 누가 무슨 역할을 했는지 밝혀내는 데 협조하는 것이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다. 뿌리 깊은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고 기회라는 인식 하에 사명감을 갖고 임해야 하는데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고 판단한다. 서민들의 삶은 갈수록 팍팍해지고 청년들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어가는데 재벌은 권력과 유착해 이익 챙기기에만 나선다는 인식을 줬다면 촛불은 재벌을 향할 것임을 경고한다. 순간은 모면할 수 있지만 진실을 영원히 덮을 순 없다. 이번 청문회가 면피나 변명의 장이 아닌 진실규명을 위한 고백의 장이 돼야 한다는 점을 수차례 강조한 이유다. 이것은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사죄이자 역사적 책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