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기자-이성규] ‘空約 가계부’ 이젠 털어버려야

입력 2016-12-06 19:17

박근혜정부는 집권 첫해인 2013년 공약가계부와 지역공약 이행계획(지역가계부)을 발표했다. 국정과제 이행을 위한 재원 134조8000억원을 증세 없이 마련하겠다는 게 공약가계부였고, 공항·고속도로 건설 등 167개 지방 공약 사업에 필요한 예산 124조원을 명시한 게 지역가계부다. 두 가계부 모두 역대 정권 최초의 시도였다. 증세 없이는 ‘공약(空約)’이 될 수 있다는 지적에도 기획재정부는 경제 상황이 바뀔 때마다 롤링 플랜(계획과 실적 간 차이를 비교해 계획을 수정하는 방식)으로 관리, 점검하겠다고 큰소리를 쳤다.

현 정부 마지막 연도 예산안이 확정된 지금, 공약가계부상 5년 동안 3조5000억원이 투입됐어야 할 고교 무상교육은 단 한푼도 배정되지 못했다. 공약가계부상 6조원이 투입될 것으로 전망됐던 2017년도 기초연금 예산은 이보다 2조원 많은 8조원이 책정됐다. 세출뿐 아니라 세입상에서도 공약가계부는 비과세·감면을 통한 세수 확보에 실패했다.

지역가계부도 사실상 사문화됐다. 124조원이 소요되는 지역공약 사업에 내년 예산까지 포함해 현 정부에서 투입되는 예산은 16조원 수준에 불과하다. 총 사업비가 500억원 이상인 사업을 대상으로 경제성이 있는지 판단하는 예비타당성조사는 45개 대상 사업 중 22개만 완료됐다.

정부는 약속과 달리 지난 4년간 예산안 편성 등 재정운용 계획을 짜면서 두 가계부를 고려하지 않았다. 지역 공약의 경우 사업 추진 일정을 뒤로 미뤄 사실상 차기 정권에 떠넘기기 식으로 변질됐다. 자세히 보면 현 정부에서 실제 추진되는 사업은 극소수다. 정부는 또 두 가계부의 이행 실적을 발표 이후 한번도 외부에 공표하지 않았다. 이를 비판하는 언론 보도가 나오면 해명자료를 통해 “정상 추진 중”이라고 주장했을 뿐이다. 집권 5년차를 앞두고 이제는 실현 불가능한 공약은 털어버려야 할 때다. 국민은 속을 만큼 속았다.

세종=이성규 경제부 기자 zhibag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