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도라의 상자가 열리기까지는 꽤 오랜 기다림이 필요했다. 제작기간 4년, 제작비 150억원을 들여 만든 영화 ‘판도라’가 7일 가까스로 세상에 나왔다. 지난해 7월 촬영을 마친 이후 1년 반 만이다.
“저는 다른 영화를 촬영하고 있어서 다행이긴 했는데(웃음) 이렇게 늦어질 줄 몰랐어요. 사실 조바심이 많이 났죠. 관객들에게 빨리 보여드리고 싶다는 마음이 컸거든요.”
이 영화의 원톱 주연인 배우 김남길(35)은 담담하게 그간의 곡절을 되짚었다. 투자 난항을 겪은 건 물론 장소 섭외조차 여의치 않았단다. 그 과정에서 외압 논란이 일기도 했다.
최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김남길은 “(영화를 통해) 안전불감증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고, 미래를 살아갈 아이들에게 인간의 의미에 대해 전하고 싶었다. 그게 마음처럼 되지 않더라”고 토로했다.
‘판도라’는 여느 재난영화와 다름없이 가상의 상황을 그린다. 우리나라에 규모 6.1의 지진이 발생해 노후 원전이 폭발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다. 컨트롤타워의 부재, 진실 가리기에 급급한 무능 정부…. 현실을 옮겨놓은 듯한 기시감이 든다.
다소 민감할 수 있는 소재지만 김남길은 개의치 않고 출연을 결정했다. “작품을 고를 때 스토리가 가장 중요하다”는 그는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스토리가 좋았다. 배우로서 보여줄 수 있는 부분도 많아 욕심이 났다”고 말했다.
“킬링타임용 영화로서는 다소 무거운 소재죠. 원자력 발전소라는 게 생소하고 어렵기도 하고요. 하지만 그 안의 드라마가 중요했습니다. 어찌 보면 뻔한 신파일 수도 있으나 인간에 대한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가슴 속 담담함을 해소시킬 수 있는 영화가 될 거란 자부심이 있었죠.”
김남길이 극 중 연기한 원전 직원 재혁은 우리 주변 어디엔가 있을 법한 평범한 청년이다. 휴일에 다 늘어진 트레이닝복을 입고 방에서 빈둥거리는 모습이 지극히 인간적이다. 그의 기존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드라마 ‘선덕여왕’(2009) ‘나쁜 남자’(2010) 등에서 선보인 섹시하거나 도시적인 느낌을 찾기 어렵다.
“과거엔 배우라고 하면 딱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양조위·장첸 같은 배우들을 롤모델로 삼았죠. 그렇게 필모그래피를 쌓다보니 (이미지가 한정된다는) 부정적인 측면도 있더라고요. ‘판도라’에서의 모습이 어색해 보일까봐 걱정이 되기도 해요.”
2003년 MBC 31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한 김남길은 차분히 배우의 길을 걷고 있다. “좋은 배우가 되기 위한 조건이 뭘까 항상 고민하죠. 시간이 지날수록 심플해지는 것 같긴 해요. 이제는 조바심도 안 나고 명쾌해지는 느낌이에요.”
아는 사람만 아는 사실 하나. 그에게는 배우 이외에 또 다른 직업이 있다. 2013년 설립된 문화예술 NGO단체 ‘길스토리’의 대표다.
각 분야 전문가 100여명으로 구성된 프로보노(Probono·재능기부) 회원들과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펼치고 있다. 현재 성북동 일대 골목길을 사진·영상 등으로 담아내는 ‘한양도성 10인10색’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고, 내년부터 ‘청년 단편영화 지원 사업’에 돌입할 예정이다.
“‘더불어 잘 먹고 잘 사는 사회를 만들자’는 모토로 시작한 거예요. 다 같이 잘 사는 사회를 꿈꾸죠. 단순히 물질적 도움이 아닌 본질적인 것들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배우로서도 또 바쁜 걸음을 재촉한다. 촬영을 마친 ‘살인자의 기억법’과 ‘어느 날’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개봉이 다 밀렸어요. 제가 영화만 찍으면 계속 개봉이 미뤄지네요(웃음).”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
“다 같이 잘 살았으면”… 김남길의 심플한 생각 [인터뷰]
입력 2016-12-07 00:00 수정 2016-12-07 1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