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 플랫폼 서울혁신파크 <3회>] 향초 품은 손난로… 적정기술과 예술의 만남

입력 2016-12-06 18:36 수정 2016-12-06 19:45
적정기술공방과 ‘정다방 프로젝트’가 협업해 만든 손난로. 적정기술공방이 기본 구조를 설계하고 정다방 프로젝트의 도자기 작가가 문양·나비 조각 등을 입혀 멋진 손난로를 만들었다. 향초가 타면서 이중으로 된 도자기가 따뜻한 공기로 데워져 8시간가량 온기가 유지된다.적정기술공방 제공
적정기술공방이 시소와 함께 강원도 춘천 별빛산골유학센터에 만든 상상 실현 놀이터. 서울혁신센터 제공
서울이노베이션팹랩에서 혁신가들이 작업하는 장면. 서울혁신센터 제공
적정기술공방 함승호 대표(왼쪽)와 시소의 김명은(가운데)·이홍우 대표. 서울혁신센터 제공
서울 은평구 녹번동 서울혁신파크(이하 혁신파크)에는 200여개의 사회혁신조직이 입주해 있다. 환경·생태·에너지, 문화·예술, 교육·컨설팅, 제조·생산·유통, 복지·인권, 건축·공간, 네트워크·지원 등 다양한 분야의 영리·비영리기업이나 단체들이다. 아직은 기반이 취약한 사회적경제 영역에서 활동하는 이들은 혁신·공유·협력을 통해 지속적으로 성장해 왔고 ‘더 나은 내일’을 함께 열어가기 위해 오늘도 쉼 없이 뛰고 있다.

협업의 시너지 효과

혁신파크 내 제작동(19동) 2층에 자리 잡은 적정기술랩. 질병관리본부 시절 곤충실험실이 있었던 이곳은 적정기술공방, 대안에너지기술연구소, 마을기술센터 핸즈 등 3개 기업의 공유 공간이다. 이들은 에너지, 주택, 환경 분야를 중심으로 사회문제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혁신기업들이다. 생태적이고 친환경적인 적정기술을 바탕으로 연구·교육·제작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적정기술랩의 7∼8평 남짓한 공용 사무실에 2일 오후 2시쯤 두꺼비하우징의 조은희(49·여·건축사) 소장이 찾아왔다. 적정기술공방에 시공을 맡긴 마포구 창전동 주택 리모델링 건을 협의하기 위해서다. 두꺼비하우징은 빈집을 리모델링해 임대하는 사업 등을 하는 도시재생 전문기업으로 역시 혁신파크에 입주해 있다.

두꺼비하우징이 의뢰받은 주택은 1979년 지어진 낡은 2층짜리 단독주택이다. 분리돼 있던 1층과 2층을 오갈 수 있는 실내계단을 만들어 달라는 집주인의 주문에 회전형 계단으로 설계했지만 현장 상황이 여의치 않아 기술적인 검토가 필요했던 것.

조 소장과 함승호(53) 적정기술공방 대표는 도면을 놓고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더니 어렵지 않게 해법을 찾아냈다. 고민이 해결되자 조 소장은 함 대표에게 스스럼없이 다른 건을 부탁했다. 서대문구 홍은동 포방터시장 내 상인들을 위해 지은 쉼터에 들여놓을 테이블 9개를 개당 6만5000원에 제작해 달라는 것이었다.

“인건비도 안 나온다”며 손사래 치던 함 대표는 “그 가격에 맞춰 달라”는 조 소장의 거듭된 읍소에 어쩔 수 없다는 듯 받아들였다.

조 소장은 “적정기술공방은 이곳에서 만나 1년 넘게 여러 차례 공동작업을 했기 때문에 서로의 사정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함께 일하기가 편하다”며 “영화제작소눈, 시민햇빛발전협동조합, 자인생태건축 등 다른 입주 기업들과도 협업하는 게 많다”고 말했다. 그는 “사회혁신을 추구하는 기업과 단체들이 함께 모여 있으니 업무협력도 잘되고 시너지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며 만족감을 표시했다.

다양한 협업의 실험장

혁신파크 입주단체들은 협업에 익숙하다. 활동 영역이 같건 다르건 일하는 방식과 지향점 등이 비슷한 기업들이 공동작업을 통해 새로운 시도를 모색한다.

적정기술공방은 지난 8월 공공공간을 디자인하는 기업 ‘티팟’, 수목을 관리하고 밧줄을 이용한 놀이의 장을 구현하는 기업 ‘시소’와 함께 혁신파크 내 피아노숲에 폐팔레트 목재와 밧줄을 활용한 창의혁신놀이터를 만들기도 했다.

내년에는 시소와 함께 서울의 7∼8개 자치구에서 빈 땅에 창의 혁신놀이터를 만들어 단기간 운영하는 ‘상상 실현 놀이터’ 사업을 진행할 계획이다. 쇠붙이 냄새나는 기존 놀이터가 아닌 자유롭게 뛰놀며 상상력과 창의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놀이터를 확산시키는 게 목표다.

문래동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예술작가들의 네트워크인 ‘정다방 프로젝트’도 적정기술공방의 협업 파트너다. 적정기술과 도자기 예술을 결합시켜 300원짜리 작은 향초로 8시간 동안 온기를 느낄 수 있는 멋진 손난로를 만드는 등 생활기술 소품을 예술로 재해석해 재생산하는 작업을 시도하고 있다.

함 대표는 “혁신파크는 입주단체들이 서로 정보를 공유하며 협업을 통해 혁신적인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공간”이라며 “이종(異種) 업종과도 함께 고민하면서 상생의 모델을 만들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공유(共有)하는 열린 공간

적정기술랩이 있는 제작동 1층에는 서울이노베이션팹랩(Fablab)이 있다. 방역 창고였던 곳을 개조해 만든 150평 규모의 이곳은 3D프린터, 레이저 가공기, CNC조각기 등 디지털 제작장비뿐 아니라 선반, 밀링, 용접기, 사출성형기까지 갖춘 기술기반 혁신 실험실이다.

혁신파크 입주자나 외부 사회혁신가, 국내외 메이커(장인), 일반 시민 등 누구나 찾아와 원하는 것을 만들어 보고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아이디어를 제품으로 실현하기 위해 고민하는 공간이다. 월 7만5000원을 내고 회원이 되거나 시간당 사용료(장비당 무료∼5000원)를 내면 대부분 장비를 마음껏 사용할 수 있다. 현재 이곳에서는 의료용 드론 개발, 증강현실 기술을 적용한 재난 대피소 건축, 도시농업용 로봇 제작 등 다양한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혁신파크는 입주단체는 물론 모든 시민에게 열린 공간이다. 음식을 조리해 먹거나 담소를 나눌 수 있는 ‘오픈스페이스’, 각종 미팅이나 개인 작업 등을 위한 다목적 공간인 ‘별별모임방’, 1인 기업이나 독립 작업자들이 아이디어를 나누며 함께 일하는 ‘코워킹스페이스’ 등 공유 공간이 곳곳에 있다.

혁신붐업 ‘작당(作黨)시작 프로젝트’

혁신파크 관리·운영 조직인 서울혁신센터는 ‘작당시작 프로젝트’(혁신파크 공모지원 사업)를 통해 입주단체들의 혁신활동을 배가시키고 있다.

매년 30여개의 프로젝트를 선정해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새로운 시도를 지원한다. 올해는 위기청소년 사례DB구축사업(자리주식회사), 소셜디렉터 99초 영화 만들기 워크숍(영화제작소눈), 자전거를 활용하는 페달파워스쿨(대안에너지기술연구소), 어린이 벼룩시장(은평맘톡톡), 옥상을 재발견해 보는 네트워킹 프로그램(슬로리프로젝트), 혁신조직을 위한 경영관리 지원서비스 플랫폼 ‘노세’ 설계(노무법인 의연) 등의 프로젝트가 진행됐다.

서울혁신센터는 입주단체 자치회와 공동으로 8∼9일 혁신파크 전역과 사무공간인 미래청 2층 오픈스페이스에서 ‘2016∼2017 서울 이노베이션 로드: 수천 개의 질문, 우리의 목소리’란 행사를 연다. 입주단체와 외부 사회혁신 활동가, 일반 시민, 서울시 관계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주제발표, 토론, 전시 등을 통해 혁신파크의 올해 활동과 성과를 공유하고 미래전망을 논의하는 자리다.

권소진(36·여·한국CHRD센터 대표) 입주단체 자치회장은 “서울혁신파크에는 사회혁신을 지향하는 조직이 모여 있지만 개별적으로 사회를 바꾸고 혁신하고, 지속가능한 사업모델을 만들어 내는 건 쉽지 않다”며 “입주단체들이 협업의 기초체력을 다지고 이를 통해 사회혁신의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도록 다양한 논의와 협력의 장을 만들어 나가겠다”고 말했다.

라동철 선임기자 rdch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