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이 국정농단 주범인 최순실씨 관련 자체 첩보 보고서들을 작성하고도 이를 국정원장과 청와대에 공식 보고하지 않았던 것으로 5일 확인됐다.
국정원은 지난달 최순실 게이트 개입 의혹을 받고 있는 추모 국장에 대한 자체 감찰을 벌이는 과정에서 국정원 내부 직원이 보고했던 최순실 관련 첩보 보고서 7∼9건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국정원은 “당시 생산된 최순실 보고서는 ‘찌라시(정보지)’ 수준에 불과해 원장에게 보고하지 않았다”고 했다. 국정원 내 일부 세력이 최순실 관련 정보를 통제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지점이다.
이병호 국가정보원장은 지난달 29일 국회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모두 합쳐 10건 미만의 최씨 관련 보고서를 추 국장 감찰 과정에서야 확인했다”며 “풍문, 찌라시 수준에 불과하다는 내부 판단에 따라 (나에게) 보고되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이 원장은 그동안 국회 정보위 회의마다 “관련 보도가 나온 뒤에야 최씨의 이름과 존재를 알게 됐다”고 주장해 왔다.
국내 정보·보안 전문가들은 이 원장의 해명이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익명을 요구한 사정 당국 관계자는 “국정원의 안테나에 최씨의 국정농단 사실이 파악되지 않았다면 국정원이 정말 무능하다는 증거”라며 “국정원은 그렇게 무능한 조직이 아니다. 보안정보 수집 과정에서 농단 의혹이 포착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순실 첩보 보고서가 국정원장이나 청와대에 제대로 보고되지 않았다면 첩보가 축소·통제됐을 가능성이 높다. 이 관계자는 “이러한 정보들이 민정수석실이나 ‘문고리 3인방’에 사전에 넘어가면 (공식 보고가) 차단될 수 있다”며 “국정원 내부 관계자가 정보를 유출한 뒤 누군가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올라가는 정보를 차단했을 것이다. 청와대에 국정농단 주범이 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의 분석을 뒷받침하는 증언도 나왔다. 국정원 국내파트 현직 간부는 최근 주변에 “나는 이미 (최순실 관련 정보들을) 보고했기 때문에 특별히 문제될 게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국정원 내부에서 최씨의 농단 사실을 상당 부분 사전에 파악했음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다른 사정 당국 관계자는 “국정원 조정관이 출입처 ‘대형 사건’을 놓쳤다는 평가를 받지 않기 위해 면피성 보고라도 하는 것이 기본”이라며 “국정원이 취득한 최씨 관련 정보를 풍문이라거나 아예 없었다고 말하는 건 최순실 게이트 연루 정황을 감추기 위한 시도일 수 있다”고 말했다. 국정원 대변인은 “(묵살 의혹은) 사실이 아니고 왜곡됐다”고 해명했다.
문동성 기자 theMoon@kmib.co.kr
[단독] 국정원 ‘최순실 정보’ 묵살… 첩보 보고서 작성했지만 원장·靑에 보고 안해
입력 2016-12-05 18:10 수정 2016-12-05 21: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