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임했습니다. 뭔가 해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습니다.”
나이는 그야말로 숫자에 불과했다. 국내 ‘10년차 베테랑’ 이정은(28·교촌F&B)이 2전 3기 도전 끝에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무대 입성에 성공했다. 동갑내기 박인비가 명예의 전당에 입성할 때 본인은 첫 발을 내디딘 것이다. 비록 시작은 늦었지만 최고 무대에 서겠다는 꿈을 이루고자 거듭된 실패를 무릅쓰고 얻은 결과여서 기쁨은 남다르다.
이정은은 4일(현지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데이토나비치 LPGA 인터내셔널(파72)에서 열린 LPGA투어 퀄리파잉(Q)스쿨 최종 5라운드에서 3언더파 69타를 써냈다. 최종합계 10언더파 350타로 단독 5위에 오른 그는 상위 20명에게 주어지는 2017시즌 LPGA투어 풀시드권을 얻어 미국 땅을 밟게 됐다. Q스쿨을 통해 내년도 LPGA 풀시드권을 따낸 한국선수는 이정은뿐이다.
2007년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에 데뷔한 이정은은 올해로 10년차 선수다. 2009년 2승을 올리고 지난해 제주 삼다수 마스터스까지 통산 5승을 거두는 등 정상급 실력을 지녔다. 지난 10월 열린 KLPGA 투어 혼마골프 서울경제 오픈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며 존재감을 뽐내기도 했다. 하지만 미국 진출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2014년부터 Q스쿨을 노크했지만 번번이 고배를 마셔야했다. 2014년 공동 28위, 지난해는 공동 53위에 그쳤다.
골퍼들의 연령대가 갈수록 낮아지는 LPGA에서 28세 여성의 도전은 무모하다는 얘기를 듣기 십상이다. 골프계 안팎에서는 “환경변화나 적응 여부 등을 고려하면 그 나이에 미국 진출이 녹록지 않을 것이다. 한국에서 입지를 다지는 게 낫지 않겠냐”는 말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LPGA 진출이라는 이정은의 염원을 꺾지는 못했다. 이정은은 올해 Q스쿨을 앞두고선 “이번이 생애 마지막 도전이다. 10년 동안 한국 무대에서 활약했으니 앞으로 10년은 미국에서 보내겠다”고 출사표를 냈다. 그는 결국 98년 당시 29세였던 원재숙(47) 이후 LPGA 풀시드권을 얻은 최고령 한국인 선수가 됐다.
이정은이 묵묵히 꿈을 향해 나아갈 수 있었던 원동력은 강한 멘탈과 쾌활한 성격이다. 소속사 관계자는 5일 “이정은은 아무리 힘들어도 속내를 잘 내비추지 않는다”며 “시련이 닥쳐도 항상 즐긴다는 생각으로 골프에 더 집중했다”고 전했다.
한국 나이로 서른 살에 미국무대를 밟을 그는 아무래도 동갑내기인 ‘골프여제’ 박인비가 신경쓰이지 않을 수 없다. 명예의 전당 입성, 올림픽 금메달 획득 등 이룰만한 업적을 다 이룬 박인비에 비해 자신은 초라해보일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는 밝기만 하다. “지금 LPGA가면 친한 선수가 딱히 없어요. 친한 선수들은 다들 선배인데 은퇴했거든요. 88년생 동갑 박인비와 앞으로 친해져야겠어요.”
이정은은 LPGA투어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두 시즌 동안 참가한 Q스쿨 대회에서 샷이 나빠서 기대했던 점수를 얻지 못했다. 올해는 지난 두 대회 때보다 샷이 훨씬 더 나아졌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LPGA에서 일단 시드 유지에 신경을 쓰겠다”며 “Q스쿨은 다시 가고 싶지 않으며 이곳에서 우승을 꼭 한번 하고 싶다”고 다짐했다.
한편 이정은과 함께 Q스쿨에 나섰던 김민지와 오지영은 상위 20위 안에 들지 못해 다음 기회를 노리게 됐다. 김민지는 공동 35위, 오지영은 공동 40위에 머물러 조건부 시드를 받았다.
박구인 기자 captain@kmib.co.kr
KLPGA ‘언니’ 이정은, 내 나이가 어때서? 28세에 LPGA 입성
입력 2016-12-05 18: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