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오전 서울 노원구 중계로. 일명 백사마을로 불리는 달동네에 흰색과 노랑 우의를 입은 사람들이 좁은 골목을 누볐다. ‘사랑의 연탄 300만장 보내기’ 캠페인을 위해 출동한 자원봉사들이었다. 저마다 연탄을 담은 지게를 어깨에 멨다. 또 다른 무리는 연탄 50장을 손수레에 빼곡히 싣고 가파른 길을 올랐다. “자아∼ 올라갑니다. 힘껏 미세요.” 왁자지껄한 목소리가 마을 곳곳에 울렸다. 이들의 목표는 에너지 취약층인 마을 주민들에게 연탄 4000장을 오전 중 배달하는 것이다.
배달 목적지는 가깝지 않았다. 다닥다닥 붙은 동네 집들이 한눈에 들어와 코앞인 줄 알았지만 착시였다. 운반 여정은 ‘좁은 길’이었다. 평지는 없었다. 길은 연신 오르막이었고 꾸불꾸불했다. 봉사자들은 허리 한 번 펴지 못한 채 500∼600m를 터벅터벅 걸었다. 연탄 한 장에 3.5㎏. 지게에는 평균 4∼6장의 연탄을 실었다. 무게는 15∼22㎏에 육박했다.
한 남성 봉사자는 “오랜 만에 군대 생각나네요. 군장 무게와 비슷합니다”라고 말 했다. 이렇게 운반하기를 예닐곱 차례. 마침내 배달 작업이 끝났다. 얼굴은 땀과 연탄재가 섞여 검붉게 변했다. 몸은 고됐지만 어려운 주민들의 집에 쌓인 연탄을 보노라니 흐뭇했다. 연탄은 누군가 전해야 하고 불을 붙여야 빛과 열을 내는 연료다. ‘배달부’들은 이날 백사마을 주민들 마음에도 불을 붙였다.
봉사자들은 50대 아저씨부터 초등학생까지 다양했다. 이날 봉사에는 마중물연예인선교회(마중물)와 고려대 85학번 동기회, 서울 바람빛교회(이남정 목사) 성도 등 120명이 참가했다. 이들은 배달에 앞서 서로 우의를 입혀주었다. 연탄가루가 앞여밈으로 들어오지 않도록 우의는 단추가 등으로 향하도록 했다. 목장갑과 팔목토시까지 착용하면서 ‘배달 복장’을 완성했다. 봉사자 일부는 기념 삼아 얼굴에 연탄자국을 묻히기도 했다.
마중물 회장 정애리 권사는 “요즘 경제 사정 악화와 연탄값 상승으로 에너지 빈곤층들의 삶이 더 힘들어졌다”며 “세상의 소금과 빛인 기독교인부터 먼저 주머니를 열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연탄은행 홍보대사이기도 한 정 권사는 연탄의 의미에 대해서도 설명을 이어갔다.
“연탄 한 장에 3.5㎏인데 갓 태어난 아기 몸무게잖아요. 연탄 10장이면 사람의 체온과 비슷하고요. 연탄을 나를 때는 마치 아기를 안 듯 하구요. 연탄은 또 스스로 타지 않아요. 누군가 불을 붙여야 타거든요. 불을 붙여주는 손길이 많았으면 좋겠어요.” 이날 정 권사는 봉사자들과 마을 주민을 위한 국밥을 현장에서 만들었다.
이남정(49) 목사는 바람빛교회 성도 20명과 함께 봉사에 참여했다. 이 목사는 “토요 새벽기도회를 대신해 참가했다. 몸으로 섬기고자 나왔다”며 “주님은 연탄 봉사를 통해 교인들을 세상 속으로 부르시는 것 같다. 봉사활동으로 우리 마음이 따뜻해졌다”고 했다. 교회 성도인 고동선(34)씨는 “지게에 연탄은 6∼7장씩 지고 날랐다”며 “땀을 많이 흘리긴 했지만 보람된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백사마을은 1960년대 후반 서울 남대문과 청계천 등이 재개발되면서 오갈 데 없어진 이들이 모이며 형성됐다. 원래 주소인 중계본동 산 104번지에서 마을 이름이 유래했다. 현재 1000세대가 거주하고 있으며 이중 600세대가 연탄을 사용한다. 마을 주민 김모(75) 할머니는 “매년 연탄은행 덕분에 살고 있다”며 “미안하고 고마울 뿐”이라고 말했다(1577-9044).
글=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 사진=김보연 인턴기자
어려운 시국에도 줄잇는 온정… 세상을 따뜻하게 데운다
입력 2016-12-05 20: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