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는 못참겠다”… 역대급 촛불 靑 턱밑으로

입력 2016-12-04 17:56 수정 2016-12-04 21:50
6주 연속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외치는 촛불집회가 열린 광화문 광장에서 촛불을 든 시민들 앞으로 청와대가 보이고 있다. 환하게 밝힌 광화문 광장과 달리 어둠에 싸인 청와대(동그라미 안)에는 적막한 기운이 감돌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제3차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지만, 3일 촛불은 더욱 활활 타올랐다. 시민들은 박 대통령의 담화를 보고 또다시 거리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박 대통령 탄핵안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국회에 대한 분노도 컸다. 시민들은 청와대로, 여의도로 행진을 이어나갔다. 법원은 사상 처음 청와대로부터 100m 정도 떨어진 효자치안센터 앞 등도 시민들에게 내줬다.

여기가 그리도 먼 곳이었나

광화문광장에 모인 시민들은 오후 4시부터 청와대의 동·남·서쪽을 에워싸며 ‘청와대 포위’ 행진에 돌입했다. 행진이 허용된 마지막 지점인 효자치안센터가 눈에 들어오자 사회자는 “드디어 청와대 100m 앞이다. 시민의 힘이다”라고 외쳤다. 시민들은 함성을 질렀다.

행진 선두에 선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은 효자치안센터에 도착하자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세월호 참사에서 희생당한 단원고 학생의 어머니는 마이크를 잡고 “2년7개월 넘게 싸워서 겨우 국민에게 허락한 게 여기까지냐. 청와대가 그리 먼 곳이냐”고 울먹였다.

유가족들은 2014년 5월 9일 박 대통령 면담을 요구하며 청와대로 향하다 200m 떨어진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에서 경찰에 가로막혔다. 유가족과 함께 활동해 온 인권활동가 미류씨도 “주민센터 앞을 지나는 순간 눈물이 솟구치는 걸 참을 수 없었다”며 “아이들 영정을 안고 온 유가족들이 무릎을 꿇고 ‘대통령님 만나주세요’라고 울부짖던 그날을 기억한다”고 소리쳤다.

오후 5시쯤 시민들은 경찰 차벽을 향해 국화를 던지며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죽었다”고 외쳤다. 국화 수십 송이가 차벽을 넘어 경찰 머리 위에 떨어졌다.

법원이 집회와 행진을 허용한 오후 5시30분이 가까워져도 시민들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시민들은 방패로 무장한 경찰 앞에서 도로에 주저앉았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고 노래를 부르며 박수를 쳤다. 오후 6시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본 집회에 참석했던 시민들은 오후 8시쯤 자하문로를 가득 채우며 행진 대열에 동참했다.

해가 진 뒤에도 청와대 턱 밑까지 밀려든 시민들은 물러날 줄 몰랐다. 대신 촛불을 하나씩 밝혔다. 집회는 오후 11시쯤에야 마무리됐다. 일부 시민들은 자정까지 청와대 100m 앞을 지키며 경찰과 대치했다.

이제는 여의도다

오후 2시쯤 시민 500여명이 여의도 새누리당 당사 앞에서 박 대통령 탄핵에 반대하는 새누리당 규탄 집회를 열고 “새누리당 해체하라”고 외쳤다. 이날 처음 촛불집회에 참가한 직장인 신민한(30)씨는 “아침에 뉴스를 보고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거리에 나왔다. 새누리당이 국민들은 배신한 채 대통령만 지키려 한다”고 비판했다.

새누리당 당사 앞에서 집회를 마친 시민들은 오후 3시부터 여의도 일대에서 행진을 시작했다. 국회의사당 근처에서는 시민들이 일제히 국회를 향해 “탄핵해”라고 외쳤다. 시민들은 국회의 탄핵안 표결을 지켜보겠다고 경고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건물 앞에서는 “전경련을 해체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건물을 향해 계란을 던졌다. 오후 4시 행진을 마칠 무렵 행진 대열에 합세한 시민들은 모두 2만명으로 불어났다. 잠시 도로가 통제되자 버스에 타고 있던 시민들도 박수를 치며 행진을 응원했다. 행진을 마친 시민들은 광화문으로 향했다.

매주 집회에 참가하고 있는 이행숙(51·여)씨는 “대통령 담화를 보고 농락당한 기분이 들었다. 혼란을 수습하기는커녕 나라를 더욱 혼란에 빠지게 만들었다”며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매주 거리로 나오겠다”고 말했다.













김판 임주언 기자 p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