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한령 한파에… 한류 지우기 나선 기업들

입력 2016-12-05 00:01
배우 송중기가 등장한 중국 스마트폰 ‘비보’의 광고(위). 아래는 지난 11월 초 바뀐 중국 배우 펑위옌. 비보 홈피 캡처
중국에서 한류로 재미를 보던 기업들이 한한령(限韓令·한류콘텐츠 금지령) 이후 ‘한류 지우기’에 속도를 내고 있다. 상품 광고에서 송중기 전지현 등 한류 스타는 일제히 현지 연예인들에게 공식 모델 자리를 뺏겼다.

4일 재계와 베이징 소식통에 따르면 지난달 중국 홈쇼핑과 전자상거래 업체 등에 “한국 제품을 줄이고 한국인 모델을 쓰면 안 된다”는 취지의 지시가 내려진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중국 내 한국 연예인의 방송, 광고, 영화 출연이 속속 중단되고 있다.

배우 이영애를 오랜 기간 단독 모델로 내세웠던 원액기 업체 휴롬은 최근 대만 배우 자오요우팅(趙又廷)을 중국 시장 모델로 기용했다. 휴롬은 이영애와 자오요우팅이 각각 등장하는 제품 이미지를 제작하고 있다.

휴롬 관계자는 “한한령이 확산되기 이전부터 논의되던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이영애 원액기’로 불리는 휴롬이 갑자기 태도를 바꾼 건 한한령 외에는 설명할 수 없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한한령이 확산되면 한국 모델에 대한 거부감도 높아질 것으로 우려된다. 중국 시장 비중이 큰 업체들로서는 타격을 받기 전에 선제 대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휴롬의 중국 수출 비중은 60%에 달한다. 화장품 회사 고운세상코스메틱은 송중기와 함께 드라마 ‘태양의 후예’로 인기를 얻은 배우 김지원을 중국 시장 모델로 세우려던 계획을 보류한 상태다.

중국 휴대전화 제조업체 비보는 광고 모델로 송중기와 계약을 체결했다가 6개월도 지나지 않아 대만 배우 펑위옌(彭于晏)으로 교체했다. 송중기를 전속 모델로 세운 쿠첸은 당혹스러워하는 분위기다. 다른 중국 휴대전화 업체 오포 역시 전지현 대신 현지 스타인 안젤라 베이비를 기용했다.

방송 콘텐츠를 생산하는 A업체는 “한한령이 불거지면서 ‘지금 제작하는 드라마·예능은 다 망하는 거냐’는 괴소문이 나돌기도 한다”며 “분위기가 워낙 안 좋은 상황에서 거대 시장인 중국을 향해 대놓고 불만을 표출하기는 부담스러운 입장”이라고 말했다.

국내 기업들은 중국 내 현지 모델 기용에 경쟁이 붙은 상황이다. 하지만 모델 계약부터 일정 조율, 광고 촬영 등 일정이 워낙 더디게 진행되기 때문에 대형 스타 대신 ‘왕훙’(인터넷 스타)을 선택하는 업체도 늘고 있다.

국내 모 화장품 업체는 지난달 진행한 중국 최대 쇼핑축제 ‘광군제’에서 티몰 메인 화면에 왕훙을 내세웠다. 이 업체는 지난해까지 국내 모델을 기용했었다. 업체 관계자는 “국내 모델을 제한하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중국 내 영향력이 높아지고 있는 왕훙을 내세웠다”고 했다.

여행·면세업계는 중국 정부가 최근 각 여행사에 내려 보낸 ‘저가 관광’ 규제 지침과 관련해 상황을 예의주시하는 상황이다. 한 업체 관계자는 “중국 단체 관광객은 통상 3∼4개월 전에 예약하기 때문에 아직은 관광객 감소를 피부로 느끼지 못하는 분위기”라며 “이달 말∼다음 달 초를 1차 고비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글=김유나 기자 spring@kmib.co.kr, 그래픽=안지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