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축구] ‘지옥→ 천국’ 왔다갔다, 서정원이 울었다

입력 2016-12-04 18:30
수원 삼성 선수단이 지난 3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FC 서울과의 2016 KEB하나은행 FA컵 결승 2차전에서 승부차기 끝에 우승을 차지한 뒤 환호성을 지르며 기뻐하고 있다. 뉴시스
서 감독이 감회에 젖어 눈물을 흘리는 모습. 뉴시스
“축구를 하면서 이렇게 힘들었던 적이 없었다.”

서정원(46) 수원 삼성 감독은 FA컵 우승 트로피에 입을 맞추며 눈시울을 붉혔다. 영욕이 교차한 시즌이었다. 처음으로 하위 스플릿으로 떨어지는 수모를 당했다. 경질설에 휩싸여 마음고생도 했다. 하지만 FC 서울과의 ‘슈퍼매치’로 펼쳐진 2016 KEB 하나은행 FA컵 결승에서 승리하며 ‘해피엔딩’을 맞았다.

수원은 지난 3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대회 결승 2차전에서 서울에 1대 2로 패했지만 1차전에서 2대 1로 이겨 연장 승부를 펼쳤다. 연장전에서도 승부를 내지 못한 수원은 결국 승부차기에서 10대 9로 이겼다. 2010년 FA컵 우승 이후 6년 만에 정상을 탈환한 수원은 내년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ACL) 출전권을 따냈다.

서 감독은 우승을 확정지은 뒤 “선수들과 소통하며 ‘수원의 자존심을 지키자’고 강조했다. FA컵에서 유종의 미를 거두자고 이야기했는데 우승으로 보답을 받아서 기분이 좋다”고 소감을 밝혔다. 서 감독은 현역 시절이던 2002 시즌 FA컵에서 수원의 주장으로 팀의 역대 첫 FA컵 우승을 경험했으며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됐다. 그로부터 14년이 지난 올해 서 감독은 팀에 통산 4번째 FA컵 우승을 안겼다.

수원은 2014, 2015 시즌 잇따라 정규리그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며 명문구단다운 면모를 보여 줬다. 하지만 이번 시즌엔 1995년 창단 이래 가장 힘든 시간을 보냈다. ACL 조별리그에서 탈락했고, 리그 7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한때 ‘레알 수원’으로 불릴 만큼 막강한 자금력을 자랑했던 수원은 모기업이 2014년 4월 삼성전자에서 제일기획으로 넘어가면서 운영비가 축소돼 큰 타격을 받았다. 2013 시즌 330억원대였던 운영비는 이번 시즌 240억원대로 축소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시즌을 앞두고 노련한 골키퍼 정성룡(가와사키)을 비롯해 오범석(항저우 그린타운), 김은선, 조성진(이상 안산), 최재수(전북) 등 실력 있는 수비 자원들이 줄줄이 팀을 떠났다.

수비가 헐거워진 수원은 이번 시즌 초반부터 흔들렸다. 시즌 중반엔 11위까지 추락해 2부리그 강등을 걱정해야 했다. 선수단 전체가 충격에 빠졌다. 서 감독은 지난 7월 2일 울산문수축구경기장에서 울산 현대에 1대 2로 패한 뒤 악몽을 겪었다. 버스에 오른 뒤 창문을 통해 분노한 팬들의 항의를 지켜보다 버스에서 내려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고개를 숙인 것이다.

서 감독의 리더십은 이때부터 빛을 발했다. 그는 선수들의 마음을 헤아리며 “끝까지 포기하지 말자”고 선수들을 독려했다. 수원 선수들은 독기를 품었고, 간절함으로 하나가 됐다. 수원은 9월초까지 불과 6승에 머무르며 10위에 그쳤지만 9월 10일 성남 FC를 2대 1로 꺾은 이후 두 달 동안 리그에서 한 번밖에 패하지 않는 등 반등에 성공했다.

수원은 이번 FA컵 우승으로 6년 만에 ‘무관(無官)’에서 탈출했다. 하지만 기쁨만큼 걱정도 크다. 당장 내년 리그와 ACL을 병행할 전력을 갖춰야 한다. 서 감독은 “ACL에 나가려면 그에 걸맞은 선수층을 갖춰야 한다. 그래야 전북처럼 우승도 할 수 있다. 어려운 상황이지만 구단의 지원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