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포커스-정상기] 러시아를 다시 보자

입력 2016-12-04 17:34

최근 강대국 리더들 중 가장 여유로운 지도자는 아마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일 것이다. 푸틴은 크림반도 병합에 대한 서방의 제재조치에 적극 대응하면서 외교 분야에서도 일정한 성과를 거두었다. 또한 자국에 호의적인 도널드 트럼프 당선 이후 미국의 대외정책 변화에 기대감을 갖고 있기도 하다. 사실 2기 오바마 행정부의 미·러 관계는 냉전시기와 같은 최악으로 평가된다. 미국은 양국 간 전략적 균형을 인정하지 않았고, 유럽에 러시아가 강력히 반대해온 미사일방어망 구축을 계속 추진하였다.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에도 나토 국가들과 함께 강력한 제재조치를 취해오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는 서방의 제재를 대내적인 구조조정과 중국과의 전략적 협력에서 돌파구를 찾았다. 과감한 산업 구조조정과 저환율 덕분에 산업 경쟁력이 회복되고 관광객도 증가하고 있다. 대외적 영향력도 급속히 회복되고 있다. 러시아는 중국과 전략적 협력관계를 맺고 대미 공동전선을 취하면서 국제 문제에서는 대부분 공동보조를 취하고 있다. 인근의 몰도바와 불가리아에서는 친러 성향의 대통령이 선출되었고, 시리아 내전에서는 러시아가 지원한 정부군이 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아시아에서 인도, 베트남과의 전통적 관계 강화와 함께 내년 3월에는 필리핀의 두테르테 대통령과 상호 군사협력을 논의한다고 한다. 러시아는 최근 막후 조율을 통해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감산 합의를 유도해 냈고, 12월 중순에는 아베 신조 총리의 정중한 초청으로 일본도 방문한다.

향후 미국의 신행정부가 중국과 러시아 중에서 어느 나라를 ‘제1 잠재 적’으로 간주할지도 중요하다. 지금까지 미국은 러시아를 제1의 적으로 중국을 두 번째 잠재 적으로 간주해 왔다. 그러나 트럼프와 푸틴이 서로 호의적 감정을 유지하는 상황에서 러시아는 내심 미국이 중국을 주적으로 간주할 것을 기대하고 있다. 그 경우 러시아는 1970, 80년대 미·중·러 3각 관계에서의 중국의 역할을 맡고 싶어 한다. 게다가 트럼프와 푸틴은 성격상 비즈니스적 시각에서 주요 국제 문제의 빅딜을 통해 세계적 이슈들을 리드해 나갈 수도 있다. 트럼프와 푸틴 간에 시리아 문제와 크림반도 병합문제를 맞교환하지 않을까 하는 나토의 우려도 이 때문이다.

러시아의 대아태지역 전략은 역내 주요 국가들과 경제외교 협력 및 극동러시아 개발을 위한 자본과 기술유치의 두 가지로 요약된다. 우리도 동북아협력구상 실현과 북핵 문제 해결에 러시아 협조가 대단히 중요하기 때문에 양국의 협력을 넓혀 나가야 한다. 그러나 연해주에 등록된 1000여개 외국 기업 중 한국 기업이 하나도 없다는 러시아 측의 지적은 뼈아프게 들린다. 우리 기업들이 극동러시아 개발계획에 진취적으로 참여한다면 외교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또한 박근혜 대통령은 2014년 서방의 러시아 제재조치로 이후 모스크바를 방문할 수 없었던 바, 차기 대통령은 러시아 국빈방문을 우선순위로 두어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우리 정부가 소(小)다자협력을 주요 외교정책으로 하고 있는 만큼 한·러·일 소다자 협력체 구상도 적극 시도할 필요가 있다.

한·러 간에는 북핵 반대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지만 해법에는 상당한 이견이 존재한다. 북핵 해법에 있어 러시아는 중국과 보조를 맞추고 있으며 사드 배치에도 반대하고 있다. (사드 배치에 보복조치를 취하지는 않는 점이 중국과는 다르다.) 대북 제재에 대한 중국의 제한적 협조와 강경한 사드 배치 반대 입장은 러시아의 공동보조에 힘입은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향후 주요 안보 이슈에서 러시아의 비토를 막거나 적어도 반대의 정도를 줄일 수 있도록 관민이 함께 노력하는 것이 요망된다.

정상기 건국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