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잖아 마련돼야 할 제7공화국 헌법 전문엔 ‘평화연대로 꺼지지 않는 촛불혁명의 열망을 담아’란 구절이 더해지면 좋겠다.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라는 대목에 이어서.
지금 광복 후 네 번째 민주화혁명이 펼쳐지고 있다. 촛불집회가 1960년 4월혁명, 80년 5·18항쟁, 87년 6월항쟁을 잇는 셈이다. 혁명이 총체적인 개혁을 말한다면 이번 촛불이야말로 의거요, 혁명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그만큼 촛불은 혁명적이다. 매주 토요일 수백만명이 함께하는 촛불시위는 그 어떤 혁명보다 부드러우면서도 강하고 집요하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드러나자 시작된 촛불혁명은 박 대통령의 즉각 퇴진을 요구한다. 남녀노소, 대학생이든 아니든, 직업이 있든 없든, 출신지역이 어디든 관계없이 자발적인 참여가 평화롭고 질서 있게 이어진다.
촛불혁명의 출발점은 ‘책임지기’다. 누구든 의무와 역할을 다하라는 단순한 논리다. 최씨의 국정농단과 박 대통령의 방조·협력 의혹에 대해 국민은 ‘용납할 수 없다’ ‘이게 나라냐’며 촛불을 들었다. 양심의 자유가 그들을 묶어냈고 그것이 국민으로서 책임지는 자세라고 모두가 공감했다. 헌법이 ‘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19조)고 지적한 것처럼.
박 대통령도 물론 책임을 져야 한다. 그가 국가권력을 사익추구의 도구로 전락시켰다면 대통령의 헌법수호 및 헌법준수의무(헌법 66조 2항, 69조)를 위반한 것이다. 이미 그 정황이 드러났음에도 그는 모든 혐의를 부인하고 있어 앞으로 특검 등에서 법리 공방이 이어질 터다. 하지만 촛불혁명의 주역들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다’며 공세의 고삐를 늦추지 않는다. ‘책임지라’는 외침과 함께.
책임져야 할 주체는 또 있다. 국회의원들이다. 박 대통령이 모르쇠로 일관하는 만큼 정국 수습 등과 관련해 그들이 책임져야 할 몫은 더 커지고 중요해졌다. 그런데도 그들의 행보는 위태롭기만 하다. 특히 지난달 29일 박 대통령이 3차 대국민 성명에서 ‘조건부 퇴진’을 말하자, 여야 할 것 없이 정치공학적인 실리계산에만 분주했다.
정치권이 ‘박·최 게이트’의 본질을 바로 보고 대응하기보다 자신들의 이익, 정파적 이해관계를 앞세운 탓이 크다. 조건부 퇴진은 처음부터 낚싯밥에 불과했던 만큼 그 프레임을 깨고 사태수습의 주도권을 되찾아 책임 있게 행동해야 옳다. ‘즉각 퇴진 및 국정 일체 불간여 선언’이 전제되지 않는 임기단축은 말장난일 뿐이다.
현행 제6공화국 헌법은 ‘국회의원은 국가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한다’(46조 2항)는 등 국회의원 의무조항을 두고 있다. 위기의 때에는 더더욱 자신이나 자파의 이익보다 국익을 우선해야 한다. 현 사태에 직면해 대부분 국민들이 이미 갈파하고 있는 사실들을 아직도 알지 못한다면 무지하거나 비양심적이다. 촛불혁명의 분노는 그들로 향할 수밖에 없다.
4월혁명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마지막 하야성명에서조차 자신의 잘못을 부인했다. ‘국민이 원한다면 대통령직을 사임하겠다’ ‘3·15정부통령선거에 많은 부정이 있었다 하니∼’ 등의 표현이 그것이다. 유체이탈화법의 원조격이다. 부정선거의 몸통이었던 그는 이미 양심과 책임을 모르는 정치가로 전락해 있었다. 사악한 역사가 반복되도록 방치해서는 안 된다.
박 대통령이 즉각 퇴진을 거부하고 있는 만큼 촛불혁명은 이제 국회의원들에게 책임을 다하라고 촉구한다. 국익 우선과 양심 준수의 의무조항을 상기, 실행하라고 거듭 외친다. 원칙대로 탄핵안을 가결시켜 촛불혁명의 첫 단계를 완성시키는 데 동참하라고 호소하고 있다.
조용래 편집인 jubilee@kmib.co.kr
[조용래 칼럼] 촛불혁명, 책임질 것을 촉구하다
입력 2016-12-04 17: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