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유형진] 책에서 광장으로 나온 민주주의

입력 2016-12-04 17:35

사람들은 자신들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을 믿고, 할 수 있는 것을 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보고 싶지 않은 진실을 보여주었을 때, 그 진실을 진실이라고 믿지 않으려고 한다. 엄연히 있어 왔고, 현재도 그런 것을 알리는 행위를 ‘폭로’라 한다. 사나운 진실. 서서히 알려졌어야 좋을 것들이 한꺼번에 드러나기 때문에 대부분 폭로는 즐거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마주하고 싶지 않은 일들을 한꺼번에 알게 해주어 듣는 이들도 괴롭고, 말하는 이도 괴롭기 때문이다. 숨겨진 진실들 중에 아름다운 이야기는 거의 없다. 대부분 많은 이들이 보고 싶지 않고, 알고 싶지 않고, 믿고 싶지 않은 추하고 더러운 일들이었기 때문이다.

‘사나운 진실’을 마주하면 사람들은 한동안 패닉 상태가 된다. 그동안 자신이 믿어 왔던 삶의 견고한 일상에 균열을 주기 때문이다. 일단은 부정하고 싶다. 설마 그럴 리가, 폭로를 비난하고, 왜 그동안 정의롭지 못한 상태를 견디면서, 겪으면서 가만히 있었는지, 오히려 더 이상 참지 못해서 폭로한 피해자들을 힐난한다. 나는 그러면 묻고 싶다. 그들이 부당함을 견디는 동안 당신은 무엇을 했습니까? 당신이 보았던 것, 믿고 싶었던 것, 할 수 있었던 것에 한계를 짓고 그 안에서 일상이 행복했습니까?

타인의 고통과 희생 위에 세워진 궁전에서 잔치가 열리고 즐거움을 향유하는 것은 정의가 아니다. 내가 하지 않았던 노력과 희생을 했던 이들의 눈물과 피땀이 있었기에 그동안 내가 즐거웠다면 그것을 노력하고 희생했던 이들에게 다시 돌려주어야 한다. 민주주의란 그런 것이라고 책에서 배웠다. 나는 요새 책에서 배운 민주주의를 내 일상 곳곳에서, 매주 광장에서 본다. 타인의 고통과 희생으로 세운 궁전 위에서 군림하던 박근혜는 청와대에만 있지 않았다. 권력이 조금이라도 있던 자들은 다 그랬다. 자신의 무지를 깨달은 사람들은 이전의 상태로 돌아갈 수 없다. 나는 이 혼란이 나쁘지 않다. 다만 혼란을 견디지 못해 다시 안갯속의 불안한 행복을 유지하려는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가려는 것만 아니면 참 좋겠다.

유형진(시인), 그래픽=공희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