옻칠 갑옷의 비늘 조각에 새긴 당나라 연호 ‘정관십구년(貞觀十九年)’(645년)의 붉은 글씨가 선명하다. 1300여년 세월을 땅 속에 철제갑옷과 큰 칼, 장식칼 등과 함께 묻혀 있던 이 갑옷 조각은 2011년 공주 공산성 조사에서 발굴됐다. 백제 마지막 왕 의자왕이 나당연합군을 피해 이곳으로 거처를 옮겨왔다가 5일 만에 항복한 곳이다. 당시의 치열했던 전투와 비운의 백제를 증언하는 이 유물이 복원과정을 거쳐 일반에 첫 공개되고 있다.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진행 중인 ‘세계유산백제’ 특별전에서다. 이곳에서 백제 관련 전시가 열리는 것은 17년 만이다. 공주·부여·익산 등 백제역사유적지구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1주년을 기념해 마련됐다. 역대 최대 규모인데, 웅진기(475∼538)와 사비기(538∼660)의 대표 문화재 350건 1720점을 풀어 놓았다. 역사의 승자 신라에 가려졌던 백제 유적이 모처럼 그 위용과 화려함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금관 장신구 향로 등 백제 예술의 미를 보여주는 식의 기존 전시와는 맥락이 다르다. 고구려의 남하 정책에 밀려 도읍을 한성에서 웅진·사비로 옮긴 백제 후기의 진면목을 보여주는데 초점을 맞춘다. 의자왕의 마지막을 떠올리게 하는 이 옻칠 갑옷 같은 유물이 있기에 전성기가 더 빛나 보인다.
전시는 이처럼 후기 백제의 성쇠를 보여줄 수 있도록 도성 사찰 능묘로 구분해 유물들을 펼쳐 보인다. 사비성이 계획도시라는 것을 보여주는 글자가 적힌 표석, 거대한 장식용 기와인 치미 등 ‘영광의 백제 도시’를 상상할 수 있는 유물을 만날 수 있다.
기와 배수관 등 수도시설과 굴뚝 화장실 부엌 창고 등에서 쓰는 유물은 왕족과 귀족의 풍족했던 일상을 엿보게 한다. 당시에 쓰던 남녀 변기, 뒤처리용 막대 등 그냥 봐서는 용도를 모르는 물건들이 적지 않은데, 친절하고 쉬운 설명이 곁들여져 감상이 편하다.
백제의 대표 유물인 무령왕릉의 벽돌식 무덤구조도 빠질 수 없다. 실제 무덤 크기의 모형을 설치해 체감도를 높이는 등 전시에도 꼼꼼히 신경을 썼다. 1971년 도굴되지 않은 채 발견돼 크게 주목받은 무령왕릉은 중국 남조에서 유행한 터널형 천장을 갖춘 벽돌무덤이다. 이는 6세기 전반 중국 남조와 일본을 이어주는 교류망을 보여주는 대표 유적이다.
오세연 전시팀장은 “백제가 중국의 문물을 받아들여 자기화한 뒤 이를 신라 일본 등에 전파하는 개방적인 모습을 부각시키고자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당시 중국의 화폐, 도자기 같은 유물만으로 동아시아 교류사와 다문화적인 개방사회 백제를 상상하는 것은 쉽지 않다. 실물 대여가 어려웠다면 비교 감상할 수 있는 모형이라도 전시해 양국의 교류에 대한 이해를 도왔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내년 1월 30일까지.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위용·화려함 뛰어나 더 슬픈 백제 유물
입력 2016-12-04 18:54 수정 2016-12-06 17: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