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초년생 임모(25)씨는 휴일마다 반나절 넘게 잔다. 틈틈이 눈을 뜰 때면 회사에서 못 끝내고 온 일과 해야 할 일이 떠올라 머릿속이 복잡하다. 빡빡하게 이어지는 업무 교육에 머리카락이 다 빠지는 기분이다. 괴로움을 잊으려 애써 눈을 다시 감는다. 잠에 빠지면 고통스러운 순간이 지나가 있을 것만 같다. 주말마다 이렇게 ‘수면 과다’ 패턴에 익숙해지다 보니 평일에는 늘 잠이 부족하다.
잠에 취하다 보면 악순환에 빠진다. 잘 땐 행복하지만 현실에서 해야 할 일들은 점점 쌓여간다. 임씨는 “비정상적이라고는 느끼지만 잠을 안 잔다고 고민이 해결될 것 같지 않다”며 “휴일 날 취미 생활하듯 잠을 자 버릇해 그만두기가 힘들다”고 토로했다.
‘과다 수면’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20, 30대들이 적지 않다. 주로 취업을 준비하거나 사회에 막 발을 들여놓은 이들이 해당된다. 남들보다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거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면서 스트레스가 쌓인다.
전문가들은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 마음이 클수록 잠에 의존하려는 ‘수면 과다증’이 나타난다고 입을 모은다. 황원준 한국정신건강연구소 원장은 “노력해도 무언가를 이룰 수 없을 것 같다는 무기력감이 나타날 때 수면 중독에 빠진다”고 설명했다. 할 일이 많을수록 잠을 줄이는 게 상식이지만 부담감이 한계 수준을 넘어서게 되면 외려 자포자기한다는 것이다.
수면 과다는 우울증 증세 가운데 하나다. 홍승철 가톨릭대 정신의학과 교수는 “우울증 환자 10명 중 8명은 불면 증상이, 2명은 수면 과다 증상이 나타난다”고 전했다. 홍 교수는 “사회초년생과 취업준비생들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린다”며 “잠이 들면 모든 걸 잊게 되면서 편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어른이 되길 꺼려하는 퇴행욕구로 분석하기도 한다. 황 원장은 “어른이 된다는 건 책임과 의무를 떠안는 것”이라며 “거부하고 싶은 충동이 잠으로 나타날 수 있다”고 진단했다. 홍 교수는 “어린아이 땐 18시간씩 자기도 한다”며 “사회초년생이 마치 아이처럼 잠을 자면서 그동안 배운 것을 정리하는 과정으로 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번아웃 증후군(Burnout syndrome)도 수면 과다를 부추긴다. 번아웃 증후군은 의욕적으로 일에 몰두하던 사람이 갑자기 신체·정신적 피로감을 호소하며 무기력해지는 현상이다. 홍 과장은 “전력을 쏟아붓던 직장인이 좌절했을 때 수면 과다에 빠지기도 한다”고 했다.
시장조사기업 트렌드모니터가 지난 7월 전국 만 19∼59세 직장인 남녀 1000명에게 설문한 결과 32.2%가 스스로를 번아웃 증후군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2030직장인이 이렇게 평가한 비율이 높았다. 번아웃 증후군에 해당된다고 생각하는 20대와 30대 직장인은 각각 38.8%와 44.8%로 40대 25.2%, 50대 20%보다 높았다. 이 가운데 다수는 피로감(66.3%·중복응답)과 의욕상실(59.6%)을 호소했다. 무기력감(43.2%), 수면장애(33.6%)도 뒤를 이었다.
전문가들은 긴 노동시간을 수면 과다를 일으키는 근본 원인으로 꼽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지난 8월 발표한 ‘2016 고용동향’에 따르면 한국 근로자 1인당 평균 노동시간은 2113시간으로 34개 회원국 평균 1766시간보다 347시간 길다. 법정 노동시간 8시간으로 나누면 한국 근로자는 OECD 평균보다 43일을 더 일하는 셈이다. 하종강 성공회대 교수는 “긴 노동시간은 우울증과 번아웃 증후군, 나아가 과로사까지 이어지는 문제”라며 “기본금을 높여 초과노동을 줄여나가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글=오주환 기자 johnny@kmib.co.kr, 그래픽=전진이 기자
[기획] 현실도피용?… 휴일마다 ‘잠’에 취하는 2030세대
입력 2016-12-03 04: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