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와중에… 지배구조 개편 서두르는 대기업들 왜?

입력 2016-12-02 04:00




‘최순실 게이트’ 후폭풍에 비틀거리고 있는 재벌들이 ‘지배구조 개편’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삼성그룹의 핵심 기업인 삼성전자는 지난 29일 지배구조 개편을 공식화했다. 증권가에선 현대차·SK·롯데·한화그룹의 개편도 급물살을 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재계는 경영 효율과 투명성 제고를 이유로 꼽는다. 지주회사 설립 시 대주주 지배력 강화 효과도 노릴 수 있다. 하지만 국정농단 사태로 야권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지난 8월 기준 삼성 등 국내 8대 그룹은 순환출자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이를 깨뜨리는 경제민주화 법안이 야권 주도로 통과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유안타증권 최남곤 연구원은 “내년 대선이 임박한 점을 고려할 때 경제 민주화 이슈에 더 힘이 실릴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개편 시기를 고민하던 기업들의 발등에 불이 떨어지게 된 셈이다.

1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10월 이후 분할, 합병을 결정한 기업은 41곳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6곳(60%) 늘었다. 현대중공업 오리온 매일유업 등이 인적 분할을 통한 지배구조 개편을 추진하고 있다.

증권가에선 이 흐름을 현재 정치 상황과 포개서 본다. 우선 ‘최순실 게이트’로 재벌기업에 대한 여론이 나빠지고 있는 점이 부담이다. 검찰이 삼성뿐만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과 독대한 재벌 총수 관련 수사를 이어가고 있어 불똥이 어디로 튈지 가늠하기 어렵다.

지난 9월 더불어민주당은 기존 순환출자를 3년 안에 해소하는 내용의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재벌개혁 목소리에 힘입어 이런 법안이 통과되면 기업들은 더 이상 구조개편을 미루기 어렵다.

특히 야당 의원들은 삼성전자 지배구조 개편 발표에 대해 “편법 경영권 승계”라며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이른바 ‘자사주의 마법’이라 불리는 개편 방식을 문제 삼은 것이다. 삼성전자는 지주회사와 사업회사로 인적 분할을 검토 중이다. 삼성전자의 자사주 지분율은 12.8%다. 이 주식은 의결권이 없다. 다만 삼성전자를 지주회사와 사업회사로 나누면 지주회사가 사업회사의 주식 12.8%를 새로 배정받게 된다. 지분 12.8%의 의결권이 저절로 살아나는 것이다.

야당에서는 이를 “투명한 지주회사 전환이라는 제도 취지를 정면으로 위배한 것”이라고 지적한다. 더민주 박용진 의원은 지난 7월 기업이 분할·합병할 때 자사주 신주 배정을 금지하는 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같은 당 이종걸 의원도 비슷한 취지의 법안을 지난 30일 발의했다.

법안이 통과되면 삼성전자 지주회사는 지분 12.8%를 사실상 포기해야 한다. 지배력을 강화하려면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 주식을 사야 한다. 삼성전자 지분 1%(약 164만327주)를 확보하려면 2조8740억원(1일 종가 174만9000원 기준)이 필요하다. 야당이 삼성전자의 개편 발표에 대해 “법 통과 전 대주주 지배력을 강화하려는 꼼수”라고 지적하는 이유다.

대기업들은 또 ‘중간 금융지주회사’를 허용하는 내용의 공정거래법 개정안에 주목한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개정안을 연내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금융계열사가 있는 재벌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이 한결 수월해진다. 현대차그룹은 현대카드, 현대캐피탈을 지배하는 중간 금융지주회사를 도입해 지배구조를 단순화할 수 있다. 삼성은 삼성생명·증권·카드 등을 지배하는 금융지주회사, 삼성전자 및 다른 계열사를 지배하는 삼성홀딩스로 지배구조를 바꾸는 게 가능하다. 다만 야당이 정부 법안에 동의할지는 미지수다. 이베스트투자증권 양형모 연구원은 “중간금융지주회사 법안과 법인세 인상 법안을 여야가 맞바꿀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금융투자업계는 조기 대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내년 지배구조 개편이 올해보다 더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한다. 개편이 임박한 기업으로 현대차그룹 등이 꼽힌다. 기존 순환출자 해소 법안이 통과되면 현대차그룹이 가장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전망도 함께 나온다. IBK투자증권 김장원 연구원은 “현대차그룹은 주력 3인방(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이 순환출자 관계이고, 경영권은 승계가 안 됐고, 승계 받을 오너가 보유한 자산이 생각만큼 넉넉한 것 같지 않다”고 평가했다.











글=나성원 기자 naa@kmib.co.kr, 그래픽=전진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