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마세요”… 한숨 뿐인 승마업계

입력 2016-12-02 00:01
정유라(20·정유연에서 개명)씨가 2014년 9월 21일 인천 드림파크 승마경기장에서 열린 2014 인천아시안게임 마장마술 개인전에서 연기를 펼치고 있다. 당시 정씨는 전날 열린 마장마술 단체전 우승을 차지해 개인전에 진출했으나 8위에 그쳤다. KBS 보도영상 캡처
승마국가대표였던 최순실씨 딸 정유라(20)씨의 대학 부정입학 등 각종 의혹으로 인해 승마 자체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승마는 부자들이 향유하는 ‘귀족 스포츠’ 이미지가 강하지만 최근 들어 생활체육 발전과 함께 각광 받는 레저 스포츠로 성장 중이었다. 그러나 정유라 파동으로 급격한 이미지 추락을 겪고 있다. 승마 유망주들은 진로 변경을 고심하고 일반인이 찾는 승마클럽의 매출도 급감하는 등 승마업계는 생사의 기로에 놓이게 됐다. 승마인들은 도시민의 스트레스 해소와 전통문화 향유라는 관점 속에서 승마에 대한 일방적 매도는 피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말 가격 최대 100억대… 정유라도 최고급 말 애용

승마선수가 되려면 대한승마협회에 본인 이름으로 등록된 말을 보유해야 한다. 말값 외에 말 관리비, 레슨비 등만 해도 연간 최소 5000만원이상 필요하다.

말의 가격은 통상 수천만원에서 10억원 이하에서 이뤄진다. 하지만 입상 여부와 기량, 기수에 따라 천문학적 비용이 매겨지기도 한다. 2014 인천아시안게임 때 정유라씨가 탔던 로열레드2는 7억∼8억원정도다. 이후 국제승마대회에서 탔던 비타나V는 17억∼18억원이다. 국내 대표선수들이 주로 2억∼7억원 사이의 말을 탄다는 점에서 ‘금수저’ 정유라의 말은 고가임에 틀림없다. 정유라 애마도 2010 세계마장마술대회 1위마 토틸라스에 비해서는 껌값 수준이다. 토틸라스는 무려 100억원을 훌쩍 넘어 화제가 됐다.

승마 종목은 장애물비월, 마장마술, 종합마술 등이 있다. 장애물비월은 700∼800m 코스에 설치된 장애물을 정해진 순서에 따라 제한시간 내 넘는 방식이다. 마장마술은 길이 60m, 너비 20m의 마장에서 선수와 말이 얼마나 조화를 이루는지를 평가한다. 종합마술은 마장마술과 장애물비월, 지구력 경기(말 속도·지구력 등 평가)를 종합해 순위를 매긴다.

국내 승마산업은 2012년 말산업 진흥법 개정 이후 성장세를 보여 왔다. 올해 기준 국내 승마인구는 4만5000명을 넘어섰고 승마시설, 말 사육두수도 꾸준히 증가했다.

승마는 지난해 12월 전국소년체육대회 정식종목에 채택됐다. 승마 특기생들도 늘어 초중고 승마특기생은 2011년 92명에서 2014년 146명으로 증가했다. 승마특기생이 소속된 학교는 2014년 기준 98개교다.



젊은 승마인들의 한숨

승마업계 종사자들과 업체들은 정유라 사태에 따른 주변의 따가운 시선으로 울상이다.

경기도 화성의 한 승마 유소년단 소속 중학생 A(14)군은 미래 국가대표를 꿈꾸는 유망주다. 하지만 ‘정유라 특혜 의혹’이 수면 위로 드러난 뒤 부쩍 고민이 늘었다. A군은 1일 “승마를 계속할지를 부모님과 진지하게 상의 중”이라며 “좋은 대학 가려고 승마를 시작한 게 아닌데 승마를 하는 모든 사람이 욕을 먹고 있어 억울하다. 미래를 고민하게 만든 최순실 아주머니, 정유라 누나가 밉다”고 흥분했다.

대학 마사과 학생들은 마사과 학생임을 주변에 밝히는 것도 꺼릴 정도다. 모 지방대 마사과 학생은 “승마 선수가 아닌 승마업계 취업을 목표로 공부하고 있는데 이미지가 나빠져 덩달아 피해를 보고 있다”며 “마사과 지원 학생도 급감할 것 같다”고 말했다.



찬바람 부는 승마클럽들

국내 승마클럽은 이미 찬바람이 날리기 시작했다. 프리미엄 클럽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이 여가로 즐기는 클럽 조차 방문객이 급감했다.

경기도 용인의 프리미엄 클럽인 B승마클럽은 매일 50∼60명 사이의 회원들로 붐볐지만 10월 이후 사정이 급변했다. 이 승마클럽 관계자는 “평소 나오던 회원수의 60% 이상이 줄었다”며 “요즘에는 말 30마리가 그냥 놀고 있어 금전적 피해가 크다”고 호소했다. 이 승마클럽은 하루 1회 1인당 9만5000원의 이용료를 받고 있다. 일주일 기준으로 보면 약 2400만원의 수입이 줄어든 셈이다.

일반인들을 위한 기마 체험을 위주로 하는 경기도 고양의 마구간승마클럽은 10월 이후 기마무예 등 각종 프로그램에 일반인들의 지원이 거의 없어 운영을 못하고 있다. 고성규(54) 대표는 “스포츠 승마와 관련 없는데도 정유라 사태 이후 피해를 보고 있다”며 “말과 관련된 것이라면 전부 색안경을 끼고 보고 있다. 반평생 말에 헌신했던 삶에 자괴감마저 느낀다”고 한탄했다.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승마클럽을 찾는 직장인 C(26)씨는 “예전엔 많은 사람들이 승마를 취미로 한다는 말에 부러워했는데 요즘은 ‘너도 정유라 부류냐’라며 쏘아붙인다”고 씁쓸해했다. 그는 “말과 함께 찍은 사진도 SNS에 올릴 수 없어 취미를 잃은 느낌”이라고 답답함을 호소했다.

승마인들은 정유라 사태 이후 일방적인 비판 분위기가 승마시장 발전에 큰 저해 요소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승마업계 관계자는 “일부 부유층의 승마 편법 이용에 대한 법적 처리는 분명히 하되 레저문화 차원에서의 승마에 대한 관심과 지원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구인 기자 capta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