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석호의 골목길 순례자-만병수와 교토교회] 의료선교로 독립운동 도운 어빈 선교사

입력 2016-12-02 20:47
1948년 교토교회에서 진행된 제5대 전영복 목사 취임예배 장면. 아래는 교토교회의 현재 모습.
최석호 목사
1914년 백산 안희제 선생은 부산 중앙동에 백산상회를 연다. 상해임시정부에 독립운동자금을 보내기 위한 것이다. 동래부사와 경상우도관찰사를 지낸 윤필은의 두 아들 윤현태와 윤현진, 경주 최부자집 주손 최준 등 영남 대지주들이 대주주로 참여한다. 윤현태 부산 초량교회 안수집사는 백산 선생이 설립한 기미육영회에도 참여하여 인재양성에 힘쓴다. 동생 윤현진 집사는 백산상회를 통해 모금한 독립운동자금을 임시정부에 보내는 일을 도맡았다. 상해임시정부 독립운동자금의 50∼80%는 윤 집사의 손을 거쳤다.

자신이 기부한 독립운동자금 중에서 절반만이라도 상해임시정부에 제대로 전달되기를 바랐던 만석꾼 최준은 상해에서 김구 선생을 만났다. 한 푼도 빠짐없이 전달된 것을 확인한 것이다. 그리고 1944년 일제의 모진 고문으로 출옥 3시간 만에 순국한 백산 안희제 선생의 무덤을 찾아 통곡했다.

미국 북장로교 의료선교사 찰스 어빈(1862∼1933)은 아내 베르다 어빈과 함께 1893년 부산선교기지에 도착했다. 1903년 부산 영주동에 기전병원, 1909년 상애원 등을 짓고 의료선교에 박차를 가했다. 1911년 부산선교기지에서 나와 어을빈병원을 개업했으며 어을빈제약주식회사를 설립하고 만병통치약으로 알려진 만병수(萬病水)를 만들었다. 1919년 윤현진 집사는 찰스 어빈이 기부한 독립운동자금 30만원을 들고 직접 상해로 갔고, 1921년 상해임시정부 재무차장(재무장관)으로 일하던 중 순국했다.

베르다 어빈은 1911년 일본으로 건너가 도시샤대 음악교수로 정착했다. 틈틈이 교토교회 조선인 성도들과 교제했다. 조선인 성도들이 공장에서 힘겹게 번 돈으로 교회 부지를 매입한 뒤 자신의 돈을 합쳐 1만5000원을 건축헌금으로 드렸다. 교토교회의 한 해 예산이 2000원이던 시절이다. 교토교회는 1935년 교회당을 완공하고 ‘주후 1935년 조선인을 위한 어을빈기념교회당’(Irvin Chapel for Koreans 1935 A.D.)이라 정초에 새겼다.

그러나 일본 경찰의 집요한 방해공작으로 입당하지 못했다. 그러자 목포주재 일본영사와 부산부윤을 역임한 와카마쓰 도사부로가 백방으로 노력했다. 그리고 1940년 4월 14일 어을빈기념교회당 교토교회 입당예배를 드렸다. 1935년 캘리포니아로 돌아간 베르다 어빈의 빈자리를 못내 아쉬워했다고 한다.

최석호<목사·한국레저경영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