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산책, 여기 어때요-탑골공원 ‘락희거리’] 추억 넘실대는 ‘노인을 위한 거리’

입력 2016-12-01 21:24

서울 종묘의 탑골공원은 오랜 역사를 지닌 도심 공원으로 접근성도 좋지만 주로 노인들이 노니는 공원으로 인식돼 왔다. 그래서 낡고 지저분한 이미지 때문에 노인들을 제외하면 찾는 이가 거의 없는 실정이다.

서울시는 ‘노인들의 섬’처럼 존재해온 탑골공원 일대를 ‘지붕 없는 복지관’으로 바꾼다는 계획을 2013년부터 추진하고 있다.

탑골공원 북문에서 낙원상가까지 이어지는 약 100m 구간에 최근 조성된 ‘락희(樂憙)거리’는 첫 결과물이다. 국내에서 처음 선보이는 ‘노인을 위한 거리’이자, 노인의 신체적·정서적 특성을 배려한 공간 디자인을 경험해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락희거리 양 편에는 ‘상냥한 가게’라는 마크를 단 11개의 상점들이 있다. 노인들이 약을 복용할 때 마실 생수를 제공하거나 화장실을 쓸 수 있도록 개방하는 가게들이다. 상냥한 가게 테이블이나 화장실에는 ‘지팡이 거치대’를 설치했다.

한 이발관에는 ‘어르신 우선 화장실’(사진) 간판이 걸려 있다. 이 화장실에 들어가면 노인들에게 흔한 실금이나 실변을 처리할 수 있도록 변기와 세면대가 하나로 된 변기일체형 세면대를 볼 수 있다. 또 미끄럼 방지 타일을 적용해 노인 낙상을 방지했다. 거리 곳곳에는 시력과 인지능력이 떨어진 노인들이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큰 글자와 그림으로 주요 시설이나 장소를 표시한 ‘어르신 이정표’를 설치했다.

락희거리에 들어서면 과거 속에 있는 듯한 느낌에 사로잡힌다. 이 거리를 특징짓는 또 하나의 키워드가 ‘추억’이기 때문이다. 낙원상가 맞은편 건물의 가로 8m, 세로 16m 크기 ‘락희벽화’에서는 1960∼70년대 인기를 끌었던 영화 장면들을 만날 수 있다. 거리 상점들은 흑백사진 속에서 보던 옛날 글씨체를 살려 간판을 교체했다.

락희거리는 일본 도쿄의 ‘스가모 거리’를 벤치마킹한 것이다. 스가모 거리는 노년층을 위한 맞춤형 상가로 한 해 900만명이 방문하는 관광명소가 됐다. 외로운 노인들의 저렴한 놀이터였던 탑골공원 일대가 락희거리 조성으로 ‘희희락락’하는 웃음소리와 볼거리로 가득 찬 노인들을 위한 공간으로 탈바꿈할지 주목된다.

김남중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