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8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의 연습실.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 시연회를 20∼30분 앞두고 잔뜩 부산스러웠다. 배우 이순재(81·사진)는 일찌감치 나와 자리를 지켰다. 연습실 한 구석에 놓인 의자에 홀로 앉아 뭐라 뭐라 중얼거렸다. 누군가에게 말을 거는 건가 싶어 힐끔 쳐다봤다. 그는 연기를 하고 있었다. 족히 수백 번은 반복했을 그 대사들을 되뇌고 또 되뇌었다.
“이 작품을 1978년에 처음 했습니다. 그때는 이해 못하는 부분이 많았죠. 2000년에 다시 한 번 했고, 2014년엔 이 작품을 원작으로 한 연극 ‘아버지’를 했습니다. 그동안 놓쳤던 것들을 보완해서 제대로 해보자는 생각으로 다시 하게 됐습니다. 아마 이번이 마지막이지 않나하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해볼 생각입니다.”
다음 달 13∼22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무대에 오르는 ‘세일즈맨의 죽음’은 이순재 데뷔 60주년을 기념한 공연이다. 시연회 이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순재는 “내가 햇수를 따지는 사람이 아닌데 후배들이 부추겨 이 행사를 진행하게 됐다. 그냥 조그맣게 ‘60주년 기념’ 타이틀만 붙이려 했는데 일이 커졌다. 대단히 송구스럽고 부담스럽다”며 멋쩍어했다.
‘세일즈맨의 죽음’은 현대 희곡의 거장 아서 밀러(1915∼2005)의 대표작이다. 평범한 가장 윌리 로먼(이순재)을 통해 무너진 아메리칸 드림의 잔해 속 허망한 꿈을 좇는 소시민의 비극을 그린다.
이 작품을 선정한 이유에 대해 이순재는 “동서양 막론하고 연극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경도하는 작품이다. 특히 우리 정서에 잘 맞는다. 부부·부자 관계가 동양적이라 공감할만한 부분이 많다”고 설명했다.
전작 ‘사랑별곡’에 이어 부부 호흡을 맞추게 된 손숙(린다 로먼 역)은 “이순재 선생님은 여든이 넘은 나이에 그 에너지가 어디서 나오시나 싶다.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하셨는데 80주년에 다시 할 수 있지 않을까”라며 웃었다. 손숙 뿐 아니라 이문수, 맹봉학, 김태훈 등 후배들이 함께한다. 이순재가 세종대에서 가르쳤던 제자들도 출연해 의미를 더한다.
이순재는 배우의 길을 택한 후배들을 향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연기란 끊임없이 공부하고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완성이라는 게 없다. 꾸준히 새로운 걸 찾고 추구하고 이뤄나가는 보람으로 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순재의 연기 인생은 현재진행형이다. 내년 영화·드라마를 한 편씩 찍기로 돼있고, 다른 연극 무대에도 오를 계획이다.
“우리 작업은 암기력이 전제돼 있어야 합니다. 제 스스로 ‘더 이상 안 되겠다’ 판단하면 그만둘 겁니다. 의욕이 있어도 조건이 따르지 않으면 누가 되니까요. 5번 정도 NG를 내면 그만해야겠다 싶을 테죠(웃음).”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
이순재 “연기란 끊임없이 공부하고 노력해야”
입력 2016-12-02 0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