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 컬렉터’가 가야할 화랑은 따로 있다?

입력 2016-12-02 00:02 수정 2016-12-06 17:27
윌링앤딜링의 강현선·호상근 작가 2인전에서 강 작가의 사진 작품이 실제 베란다처럼 벽면을 덮고 있는 모습(위쪽)과 아트스페이스 풀 ‘공감오류’전의 전시 전경. 윌링앤딜링·아트스페이스 풀 제공
바야흐로 ‘13월의 보너스’ 계절이 돌아왔다. 연말정산을 꼼꼼히 챙기면 두둑한 목돈이 떨어질 수 있다. 평소 거실에 문화적 분위기를 내보고 싶었다면 연말정산 환급금에 돈을 좀 보태 미술작품을 사는 건 어떨까.

무턱대고 ‘화랑가 1번지’인 경복궁 옆 종로구 삼청로 일대에 갔다가는 민망해지는 순간이 있을 것이다. 그곳에서 전시 하는 작가들의 작품 가격은 수천만원에서 수억 원 한다. 월급쟁이 초보 컬렉터가 가야할 화랑은 따로 있다. 미술계 주요 인사들에게 현재 작품 가격이 300만∼500만원 정도이면서, 전도유망한 작가를 발굴하고 키워주는 화랑(대안공간)을 추천해달라고 부탁했다<표 참조>. 다수가 추천한 곳 중 ‘윌링앤딜링’과 ‘아트스페이스 풀’를 지난 29일 찾아가 봤다.

서울 서초구 방배동 윌링앤딜링

“화랑의 상업적인 시스템에 구애받지 않고도 유연하게 작동되는 새로운 전시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성격요? 갤러리도, 대안공간도 아닌 새로운 무엇이죠.”

화랑가와 떨어져 있는 곳이다. 그럼에도 입소문이 난 비결이 궁금해 물었더니 김인선(45) 대표는 이렇게 답했다. 그는 대안공간, 갤러리, 미술관, 비엔날레 기획 등 미술계에서 다양한 경험을 거쳤다. 갤러리처럼 작품을 판매하지만 독지가로부터 운영비를 지원받기 때문에 상업 논리에서 비교적 자유롭다고 한다. 현재는 강현선·호상근 작가의 2인전인 ‘튀어나온 돌과 펜스전’이 열리고 있다. 네이버문화재단이 젊은 시각예술가를 지원하려는 목적으로 온라인에 소개해온 작가 가운데 선정해 릴레이로 전시를 열어주는 ‘헬로 아티스트-아트 어라운드’ 프로그램의 일환이다.

서울대 서양화과 출신의 강현선 작가는 화분이 놓인 아파트 베란다 사진을 확대 출력해 전시장 벽면에 붙여놓는 작품을 선보였다. 사진은 ‘뽀샵’을 해 실제 같으면서 비실제 같은 착시에서 오는 즐거움이 있다. 한성대 서양화과 출신의 호상근 작가는 우리 사회 일상의 유머러스한 풍경을 일기처럼 색연필 등으로 드로잉한 소품 연작을 내놓았다. 차를 대지 못하게 쌓은 화분 등 주차금지 시리즈, 밤에 선캡을 한 할머니, 계단에서 발뒤꿈치 운동을 하는 아저씨 등 마음이 따뜻해지는 장면들이 많다. 김 대표는 “제 또래 40대 ‘학부형 컬렉터들’이 많이 찾는다”면서 “수십만원에서 100만원, 200만원대 작품이 인기”라고 말했다. 아트숍도 갖춰 편안한 분위기가 장점이다. 전시는 30일까지.

서울 종로구 구기동 아트스페이스 풀

아트스페이스 풀은 루프, 사루비아다방 등과 함께 1990년대 생겨난 1세대 대안공간이다. 인사동에서 출발해 2006년 마당이 있는 가정집을 개조한 이곳으로 왔다. 상업논리를 벗어난 미술 실험을 할 수 있는 전시공간을 기치로 작가, 기획자, 비평가 등 다양한 미술인의 발의로 만들어졌다. 운영위원 외에도 작가와 비평가들로 구성된 기획자문위원도 두고 있어 전시 작가군이 신선하다는 평가를 듣는다. 미술전문지 기자 출신의 이성희(38)씨가 대표를 맡고 있다.

아트스페이스 풀의 신진작가 지원프로그램에 당선된 젊은 작가들의 기획전 ‘공감오류: 기꺼운 만남’전이 진행 중이다. 이 대표는 “불안하고 암울한 현실을 관찰하면서 자신만의 시각을 찾는 작가들”이라고 설명했다. 강기석 작가는 치매에 걸린 할머니, 장님, 절름발이 등 타자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퍼포먼스 비디오 등을 통해 보여준다. 신정균 작가는 군대·남북관계·전쟁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유머러스하게 다룬다. 미술강사 시절 학생들에게 그리게 한 베고니아 꽃이 북한에서 ‘김정일화’로 숭배되는 현실을 뒤늦게 안 그는, 이를 노래방 노래로 패러디하기도 했다. 18일까지.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