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 역사 교과서 현장검토본의 문제점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기초적 사실관계가 틀리거나 최근의 연구 성과가 반영되지 않는 등 총체적으로 부실했다. 중복 서술, 사료 왜곡, 편향 서술도 문제로 지적됐다. 야당은 집필진 원고를 국사편찬위원회 직원들이 수정했다고 폭로, 소송으로 번질 조짐이다.
역사교육연대회의는 30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 역사문제연구소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국정 역사 교과서 분석 내용을 발표했다. 이들이 이틀간 발견한 오류만 120개가 넘었다. 이들은 국정 교과서 오류 건수가 교학사 교과서를 능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교학사 교과서의 경우 300여건의 오류가 발견돼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기초 사실관계도 틀려
역사교육연대회의는 국정 교과서가 가장 기초적인 사실관계조차 제대로 서술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임시정부와 일제강점기 부분에서만 100개가 넘는 오류가 발견됐다. 비중이 작은 선사시대 부분에서도 3쪽 분량의 오류를 찾아냈다. 강성호 순천대 교수는 14쪽 분량의 서양고대사 부분에서 19건의 확실한 오류가 발견됐다고 말했다.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는 안중근 의사의 ‘동양평화론’을 자서전이라고 소개했다. ‘동양평화론’은 안 의사의 정치사상을 정리한 미완성 논책이다. 통합임시정부 내 안창호 선생의 직책도 틀렸다. 국정 교과서는 내무총장으로 설명하고 있지만 당시 직책은 노동부 총판이었다. 이 밖에도 인류가 최초로 사용한 금속은 청동이 아닌 순동임에도 ‘청동기’로 서술하는 등 초보적인 수준의 오류가 곳곳에서 발견됐다.
최신 연구 성과 반영 못해
교육부는 지난 28일 국정 역사 교과서를 공개하며 “최신의 연구 성과를 반영했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그러나 50년도 더 된 학설을 바탕으로 서술된 부분도 있었다.
한국사 교과서는 “동아시아에서는 서남아시아보다 농경이 늦게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남중국 지역에서 서남아시아보다 최소한 1000년 이상 앞서 쌀을 재배한 것으로 밝혀졌다. 교육부는 국정 교과서에서 고려후기 권문세족을 ‘권문’과 ‘세족’으로 나눠 서술했다며 최신 연구 성과를 반영한 사례로 들었다. 이는 1990년대 초 제기된 학설로 학계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지도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역사교육연대회의는 집필진 대다수가 고령의 학자들로, 최근 학계 동향을 제대로 따라가지 못해 생긴 문제점이라고 봤다.
중복 서술·편찬위 직원 내용 수정
중학교 역사 교과서와 고교 한국사 교과서에서 서술이 완전히 일치하거나 동일한 부분도 5군데 이상 발견됐다. 민족문제연구소 이준식 연구위원은 “복사-붙여넣기 교과서”라며 “교육부가 질 높은 역사 교과서를 만들겠다고 호언장담했지만 그에 한참 못 미치는 함량미달 교과서”라고 비판했다.
집필 과정에도 문제점이 발견됐다. 더불어민주당은 30일 국사편찬위원회를 방문해 긴급 현장조사를 벌인 결과 “집필위원 외의 편찬위 직원 24명이 사실상 내용을 수정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또 집필진이 쓴 초고와 개고 파일이 일괄 삭제되고 관련 이메일도 보안을 이유로 일괄 폐기됐다. 민주당 역사교과서 국정화저지 특위는 “공공기록물 관리법 위반사항을 검토해 소송과 감사원 감사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가현 기자 hyun@kmib.co.kr
오류투성이… 교학사 300여건을 능가할 듯
입력 2016-11-30 17: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