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세부 쓰레기 마을을 가다-(하)] 하나님 눈물 고인 곳에서 미래 희망의 싹 키웁니다

입력 2016-11-30 21:00 수정 2016-11-30 21:05
박동호 세부 갈보리교회 선교사(가운데)가 21일 필리핀 세부 파그라움센터 앞에서 자신의 스쿠터에 아이들을 태운 채 활짝 웃고 있다. 밀알복지재단 제공
박동호(오른쪽 첫 번째)·황영희(왼쪽 네 번째) 선교사 부부가 21일 필리핀 세부 파그라움센터에서 수화수업을 마친 아이들과 함께 밝은 표정으로 단체사진을 찍고 있다. 밀알복지재단 제공
청소년 돌보는 ‘파그라움센터’ 박동호·황영희 선교사 부부

‘탈탈탈, 위잉∼.’

지난 21일 오전 7시30분. 반팔 티셔츠에 밀짚모자를 쓴 박동호(55·세부 갈보리교회) 선교사가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푸른색 스쿠터를 타고 등장하자, 동네 꼬마 아이들이 한류스타를 만난 듯 우르르 몰려갔다. 작은 바퀴 네 개에 의자 하나뿐인 스쿠터는 예닐곱 명의 아이들이 올라타며 순식간에 만원버스가 됐다. 해맑은 아이들의 깔깔거리는 웃음과 미소가 아침 공기에 얹힌 채 퍼져나갔다.

박 선교사가 도착한 곳은 필리핀 세부 이바바오 지역의 스눅 마을에 자리 잡은 ‘파그라움(Paglaum)센터’. 세부어로 ‘희망’을 뜻하는 이곳에서 박 선교사는 아내 황영희(54) 선교사와 함께 7년째 사역 중이다.

“처음 이바바오 지역에 들어간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왜 하필 거기냐’ ‘다른 곳으로 알아보라’는 말들이 쏟아졌어요.”(황 선교사)

이바바오 지역은 필리핀 사람들에게 ‘미래가 없는 곳’이라 불린다. 2년 전엔 부모들이 자녀를 사이버 성매매에 이용한 것이 드러나 ‘아동학대 마을’이란 꼬리표가 붙었고, 살인청부업자들의 집단 거주지도 있어 접근하기조차 힘든 곳이었다. 화려한 휴양지로 알려진 세부의 어두운 그늘인 셈이다. 하지만 선교사 부부는 가장 낮은 자리로 거침없이 향했다. 장애를 가진 자로서 장애를 가진 이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희망을 전하기 위해서다.

두 선교사 부부는 유년 시절 찾아온 소아마비로 나란히 장애인으로서의 삶을 살아 왔다. 여덟 살 때 소아마비를 겪은 박 선교사는 스무 살 때까지 집 밖으로 나서지도 못한 채 평생을 휠체어 위에서 살아야하는 신세가 됐다. 황 선교사는 세 살 때 소아마비를 겪은 뒤 발목 절단 수술을 받고 지금은 철심이 박힌 발로 땅을 지탱하고 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장애가 예수 그리스도 제자로서의 삶을 살기 위해 하나님께서 도구로 주신 선물”이라고 입을 모은다.

2011년 밀알복지재단(이사장 홍정길 목사)은 해외지원사업을 본격화했다. 이 때를 계기로 황 선교사는 세부지역 프로젝트 매니저(현재는 지부장)로 발탁됐고, 필리핀 사역은 급물살을 탔다. 현재 센터를 통해 지역 내 장애아동 및 저소득 청소년 85명이 교육·생계지원을 받고 있다. 이동이 불편한 장애아동 가정을 위해서는 쌀, 물 등 생필품을 구입해 황 선교사가 직접 전달하기도 한다.

센터는 일요일엔 성도 160여명이 모여 예배를 드리는 교회로, 평일엔 7∼11세 아동들의 공부방이자 놀이터로 항상 웃음꽃이 핀다. 오전·오후반으로 나뉘어 학교에 다녀온 아이들이 이곳에서 공부하고 뛰어놀며 어둡고 침침했던 마을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올해 이바바오초등학교 졸업식에선 우수학생 10명 중 7명에 센터에 다니는 아이들의 이름이 올라 지역 주민들을 놀라게 했다. 가장 중요한 수업은 ‘수화(手話)’시간이다. 박 선교사는 “아이들이 언제든지 장애인 친구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준비하는 과정”이라며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이 땅에 전파하고 싶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센터 인근에 자리 잡은 그룹홈 ‘필베밀하우스’에는 4년째 장애아동과 빈곤 청소년들이 함께 생활하며 마음의 장애가 없는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다. 이곳에는 4명의 청소년들이 지적장애를 앓고 있는 알드린(11), 학습장애를 가진 미야(18·여)를 가족처럼 챙기며 살아가고 있었다. 알드린을 친동생처럼 보살피던 닌야(18·여)는 “선교사님들이 보여주신 사랑을 전할 수 있는 사회복지사가 되고 싶다”며 웃어보였다.

파그라움 센터 앞마당에 공사 중인 3층짜리 건물이 눈에 띄었다. 지역 내 최초로 건립되는 장애인통합복지센터다. 황 선교사는 “장애인 주간보호, 직업재활, 청소년 훈련 등 필리핀 사회가 보장해주지 못하는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게 될 것”이라고 소개했다. 올해 9월 완공예정이었던 센터는 후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건축이 중단될 위기에 처해 있다. 하지만 황 선교사의 얼굴에선 아쉬움보단 기대감이 엿보였다.

“하나님의 일이 때론 느리게 진행되면서 더 견고해지는 것을 경험했어요. 하나님의 눈물이 고인 이곳 스눅 마을에 더 큰 희망의 씨앗이 뿌려질 것이라 믿습니다.”

세부=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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