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한국을 헬조선이라고 하는 60가지 이유’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달궜다. 한국 아동 학업 스트레스 세계 최고 수준, 한국인 행복지수 OECD 최하위 수준, 한국 고용안정성 OECD 국가 중 최하위, 노인 빈곤율 1위 등 뉴스 화면 60개를 갈무리한 합성사진이 한국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줬기 때문이다.
‘헬조선’은 지옥을 뜻하는 헬(hell)과 조선의 합성어로 절망적인 한국을 의미하는 신조어다. 처음에는 청년 세대에서 주로 쓰였지만 지금은 소수의 기득권층을 빼고는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공감을 얻는 단어가 됐다. 최근 주말마다 열리는 대규모 촛불 집회는 박근혜-최순실의 국정농단이 방아쇠를 당기긴 했지만 헬조선에 대해 쌓였던 국민의 분노가 폭발한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왜 헬조선이 되었을까? 국민은 왜 점점 더 불행해졌을까? ‘지위경쟁사회’와 ‘대리사회’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체제에서 지위경쟁에 내몰리고 천박한 욕망을 강요하는 한국 사회를 해부한다.
‘지위경쟁사회’에서 사회경제학자인 저자 마강래씨는 경제 지표로만 보면 과거보다 훨씬 풍요로워진 한국에서 사람들이 불행한 이유를 지위에 대한 끝없는 경쟁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본래 지위경쟁은 학력이 사회적 지위획득의 수단이 되면서 사람들이 더 높은 학력을 취득하려 경쟁하는 현상을 가리킨다. 저자는 이 용어를 빌려와 그 개념을 확대하고 재규정한다. 저자에 따르면 한국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무엇을 가졌는지보다는 ‘남들보다’ 무엇을 얼마다 ‘더’ 가졌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하게 됐다. 즉 절대적인 성취보다 상대적인 위치가 더 중요해지는 ‘지위경쟁’이 치열하다는 것이다.
이런 지위경쟁은 노동·소비·교육·결혼 등 모든 영역에서 나타나고 있다. 혹독한 지위경쟁사회에서는 내가 가만히 있으면 남들이 나를 앞질러 간다. 앞서가는 사람에게는 큰 보상이, 뒤처지는 사람에게는 가혹한 벌칙이 주어지는 구조에서 사람들은 잠시도 쉬지 못한 채 달릴 수밖에 없다. 결국 무한경쟁의 악순환 속에서 사람들은 최선을 다해 불행해질 뿐이다. 전형적인 ‘낭비 경쟁’이다.
사실 이런 경쟁이 사회 발전 초기에는 긍정적인 효과를 발휘했다. 더 많이 일할수록 생산량이 늘어남으로써 사회적 부를 늘리며 경쟁 참여자들에게도 이익을 주기 때문이다. 단기간에 거둔 한국경제의 발전을 보면 알 수 있다. 하지만 일정한 발전을 이룬 사회에서 이런 지위경쟁은 더 이상 사회적 부를 높이지 못할 뿐만 아니라 소수가 사회적 보상을 독식함으로써 지속가능성을 저해한다. 저자는 이제라도 경쟁의 속도와 정도를 늦춰야 한다고 외친다.
‘대리사회’의 저자 김민섭은 2014년부터 309동1201호라는 필명으로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를 온라인 사이트에 연재해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켰다. 조회수가 무려 200만건을 넘어가며 맥도날드 아르바이트만도 못한 시간강사의 처우 문제에 사회적 관심을 크게 불러 일으켰다. 연재물은 지난해 11월 동명의 책으로 나왔지만 저자는 내부고발자로서 동료들의 거센 비난을 받고 시간강사를 그만뒀다.
저자는 자신이 대학에서 보낸 8년 동안 스스로를 대학의 구성원이자 주체로 믿었지만 학교를 나오며 그 환상이 강요된 것이었음을 깨달았다. 강의하고 연구하고 행정노동을 하는 동안 그는 사회적 안전망을 보장받을 수 없었고, 재직증명서 발급 대상조차 아니었던 것이다. 그는 그저 우리 사회가 강요하는 천박한 욕망을 대리해서 살았던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시스템에 순응하는 ‘대리국민’을 만들어내는 최전선인 대학을 나온 뒤 저자는 ‘카카오 대리기사’가 됐다. 그리고 세상 자체가 거대한 강의실과 연구실임을 깨닫고 택시라는 가장 좁은 공간에서 우리사회의 모습을 바라보기로 결심했다. 이 책은 저자가 ‘대리의 시간’을 몸으로 경험하면서 행위·말·생각이 통제되는 대한민국 노동현장의 단면을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대리사회에서 인간은 더 이상 신체와 언어의 주인이 아니었고, 사유까지도 타인의 욕망을 대리하고 있었다. 저자는 온전한 나로서 살려면 한국사회의 시스템에 대해 끊임없이 불편해하며 의심하고 질문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스스로 사유하지 않으면 결국 사회가 강요하는 타인의 욕망을 자신의 욕망이라 믿으며 타인의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글=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 그래픽=이은지 기자
[책과 길] 우리는 그토록 노력해도 왜 불행해지는가?
입력 2016-12-01 17:42 수정 2016-12-02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