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김재중] 지금 필요한 건 행동이다

입력 2016-11-30 17:35 수정 2016-11-30 21:29

“정권의 발전은 민심을 따르는 데 있고, 정권의 몰락은 민심을 거스르는 데 있다(政之所興 在順民心 政之所廢 在逆民心).”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이 2013년 12월 26일 마오쩌둥 탄생 120주년 기념 좌담회에서 인용한 고전 ‘관자(管子)’ 목민(牧民) 편의 한 구절이다.

이 명언은 현재 대한민국 정치상황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박근혜 대통령이 29일 3차 대국민 담화를 한다고 예고했을 때 사실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평소 그분이 보여줬던 ‘유체이탈’ 화법과 민심과 괴리된 ‘천상 인식’ 때문이었다. 그래도 국가적 혼란이 빨리 수습되고 국민이 더 이상 대통령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결단을 내려주길 바랐다.

하지만 그분은 또 한번 기대를 저버렸다. 190만 촛불로 드러난 민심을 외면하고 어떻게든 목전에 닥친 탄핵 위기를 모면하고자 꼼수를 부리는구나 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박 대통령은 1998년 처음 정치를 시작했을 때부터 대통령에 취임해 오늘에 이르기까지 오로지 국가와 국민을 위하는 마음으로 모든 노력을 다해왔다고 말했다. 과연 그랬을까.

기자가 정치부로 발령받고 첫 선거 취재를 나갔던 기억이 생생하다. 1998년 4월 박 대통령이 국회의원에 처음 출마했던 대구 달성군 보궐선거였다. 당시 박 대통령의 상대는 안기부(현 국가정보원) 기조실장을 지낸 여당의 엄삼탁 후보였다. 박 대통령은 조직과 자금 등 어느 것 하나 유리할 게 없었지만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향수에 힘입어 압도적 표차로 당선됐다. 그때 박 대통령을 지지했던 대구 시민들 중에는 속았다는 생각에 촛불을 든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박 대통령을 다시 만난 건 2012년 새누리당 팀장으로 대선 과정을 취재할 때였다. 그는 후보시절 “나에게는 가족이 없다. 오직 국민들만 바라보며, 국민들의 행복을 위해서 일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결국 그 국민이 ‘최순실’이었다는 말인가.

한때 ‘선거의 여왕’으로 불리며 콘크리트 지지율을 자랑했던 박 대통령은 이제 국정지지율이 역대 최저인 4%까지 추락했다. 급기야 탄핵안이 발의돼 직무가 정지될 위기에 처해 있다. 무엇이 이토록 한 정치인을 몰락하게 만들었을까. 그 답은 ‘민심’에 있다. 다섯 번의 촛불집회를 통해 확인된 민심은 “대통령 자격이 없으니 즉각 물러나라”는 것이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3차 담화에서도 교묘하게 민심을 흐트러뜨리며 자신은 사익을 추구하지 않았다고 검찰 수사 결과를 정면으로 반박했다. 임기 단축을 언급하면서 여야가 합의하면 법적인 절차에 따라 물러나겠다고도 했다. 정치권이 합의하기 힘든 개헌을 염두에 둔 노림수로 보인다. 대통령의 담화 내용은 항상 조건이 붙어있다. 그것도 실현하기 어려운 조건이다. 그래서 진정성을 느낄 수 없다. 우리 국민은 현명하다. 이내 그 속셈을 알아차리고 더 큰 촛불을 만들어낼 것이다.

지금은 박 대통령이 입으로만 사과할 게 아니라 책임 있는 행동을 보여줘야 할 때다. 국회에 본인의 거취를 맡길 게 아니라 결자해지(結者解之)하는 자세로 본인이 아무런 조건 없이 분명하게 퇴진 시점을 밝혀야 한다.

그게 어렵다면 미래의 교훈을 위해서라도 여야는 탄핵을 결행해야 한다. 이번 탄핵 투표는 역사적인 ‘11월 시민혁명’의 첫 결실을 맺는 것이다. 대통령 담화로 촛불의 의미를 흐리거나 민심을 외면한 채 패거리 정치 행태를 보이는 이들은 국민이 반드시 심판할 것이다. ‘물은 배를 띄울 수도 있지만 배를 뒤집을 수도 있다(水能載舟 亦能覆舟).’

김재중 사회2부장 j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