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3차 대국민 담화는 초읽기에 들어간 탄핵을 피하기 위한 시간벌기용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담화 발표가 야3당의 탄핵 발의 하루를 앞두고 갑작스레 이뤄진 것이나 진퇴문제를 대통령 본인이 결정하지 않고 국회에 떠넘겼다는 점에서 그렇다. 당장 이정현 대표 등 새누리당 친박 지도부는 “국민의 뜻에 부응한 담화”라며 탄핵 물타기에 발 벗고 나섰다. 탄핵 찬성 입장을 밝혔던 일부 비박 의원도 관망세로 돌아섰다.
박 대통령은 임기 단축을 포함한 진퇴 문제를 국회 결정에 맡기면서 조건을 달았다. 여야가 국정 혼란을 최소화하고 안정되게 정권을 이양할 방안을 만들어주면 그 일정과 법 절차에 따라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겠다는 것이다. 서청원 의원을 비롯한 친박 중진의원들이 건의한 ‘명예로운 퇴진’과 궤를 같이한다. 여기에는 명예를 보장하는 선결조건이 충족되지 않을 경우 불가피하게 대통령직을 유지하겠다는 뜻이 내포돼 있다.
현 정치구도상 정치권이 대통령이 내건 조건을 이행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우선 정치이양 일정만 해도 즉각 하야를 요구하는 야권과 질서 있는 퇴진을 희망하는 새누리당의 간극이 너무 크다. 게다가 새누리당 친박 지도부가 박 대통령은 물론 자신들에 대한 정치적 사망선고와 다름없는 야당의 요구에 순순히 응할 가능성은 극히 낮다. 십중팔구 여야 간에 논란을 거듭하다 하염없이 시간만 흐를 가능성이 농후하다. 박 대통령의 노림수가 엿보인다. 야권이 박 대통령 담화를 꼼수로 일축한 이유다.
또 하나의 걸림돌은 ‘법 절차’이다. 현행 법체계상 대통령 임기를 단축할 수 있는 방법은 개헌밖에 없다. 일반 법령에 의한 대통령 임기 단축은 불가능하다. 개헌은 각 당의 입장이 다르고 대선 예비주자마다 생각이 다른 매우 민감한 문제다. 합의도 어려울뿐더러 시간도 오래 걸린다. 2018년 2월 24일 끝나는 박 대통령 임기 내에 개헌이 이뤄지지 않을 수도 있다.
박 대통령은 담화에서 ‘하야’나 ‘탄핵’이란 단어를 일절 쓰지 않았다. 대신 ‘임기 단축’이란 표현을 썼다. 어떻게든 권좌에서 쫓겨났다는 불명예를 피하고 싶어 하는 간절함이 읽힌다. 개헌이 되면 새 헌법에 따라 임기가 만료된 대통령으로 기록돼 최소한의 명예는 지켜질 것으로 판단한 듯하다. 박 대통령이 최순실씨의 국정농단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거나 개입한 것으로 검찰수사에서 드러났음에도, 사익을 추구한 적이 없고 사람관리를 잘못한 죄밖에 없다고 강변한 점도 담화의 진정성을 의심받게 한다.
결국 이번 담화는 190만개의 촛불로 나타난 민심과 동떨어졌다는 평가가 많다. 탄핵으로 흐르던 정치권의 물줄기를 일시적으로 다른 곳으로 돌리는 데 효과를 거뒀는지 몰라도 조건 없는 즉각 하야를 바라는 성난 민심에 불을 질렀으면 질렀지 긍정적 영향을 주지는 못했다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때문에 박 대통령의 3차 대국민 담화도 1, 2차 담화와 마찬가지로 메아리 없는 대통령의 독백으로 끝날 공산이 크다.
이흥우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hwlee@kmib.co.kr
개헌론 불지펴 탄핵 판 흔들기… 또 민심 역행
입력 2016-11-30 00:09 수정 2016-11-30 0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