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합천, 물안개 속 징검다리 건너 황홀경 속으로

입력 2016-12-01 04:13
갈마산으로 향하는 등산객이 경남 합천을 가로지르는 황강 위에 설치된 징검다리를 건너고 있다. 초겨울 동틀 무렵 자욱하게 춤을 추듯 피어나는 물안개가 아침 햇살에 물들며 신비로운 모습을 펼쳐놓고 있다.
오도산 정상을 찾은 여행객이 중중첩첩 산 너머로 붉은 빛을 내뿜는 저녁 노을을 카메라에 담고 있다. 멀리 합천호 오른쪽으로 지리산 천왕봉도 시야에 잡힌다.
황강변에 자리잡은 고려시대 정자 함벽루
합천영상테마파크 인근에 지난 7월 개장한 청와대세트장
경남 합천은 팔만대장경이 있는 해인사와 가야산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이들을 능가할 정도로 아름다운 여행지들이 곳곳에 보석처럼 박혀 있다. 물도 좋고 산도 많다. 그래서 ‘수(水)려한 합천’을 내세운다. 합천읍 일대는 북쪽에 산악으로 막혀 있고 남쪽은 물길이 가로지른다. 아름다운 풍경을 풀어놓는 그 물길과 산세를 따라 초겨울 합천으로 떠나보자.

‘남곽자(南郭子)처럼 무아지경에 이르진 못해도/강물은 아득하여 알 수 없구나/뜬구름의 일을 배우고자 하나/오히려 높다란 바람이 흩어 버리네.’

남명(南溟) 조식(曺植) 선생이 합천 함벽루(涵碧樓)에서 황강(黃江)의 아름다운 경치에 도취돼 읊은 시다. 자신의 학업을 닦음이 쉽지 않음을 고백한 듯하다. 황강변에 위치한 함벽루는 고려 충숙왕때 지어졌다. 퇴계 이황, 남명 조식, 우암 송시열의 글이 현판에 걸려 있다. 정자 뒤 암벽에 새겨진 함벽루란 글씨도 송시열의 솜씨다. 함벽루에서 내려다보는 황강은 역사의 우여곡절 속에서도 여전히 쉼없이 흐르고 있다.

황강은 경남 거창군 가북면 산악지대에서 발원해 북상면 남덕유산에서 내려온 위천과 거창읍에서 합류되고, 합천에 들어서면서 강다운 모습을 갖춘다. 청덕면 적포리에서 낙동강 본류와 만나기까지 111㎞를 흐르는 강은 합천의 중심을 흐르는 젖줄이다.

황강은 강바닥이 둘레보다 높은 천정천(天井川)이었다. 그래서 강 주변에 기름진 논이 생겨났고, 이는 사람들이 먹고살 수 있는 바탕이 됐다. 또 정양늪·연당지 같은 습지도 많아 다양한 생명을 품고 있다.

동틀 무렵 물안개 자욱하게 피어나는 황강은 신비로움을 자아낸다. 물안개는 가을부터 겨울까지 얼굴을 내민다. 출렁출렁 끝없이 이어지는 물안개는 은은한 빛을 내뿜으며, 찾는 이들에게 자유로운 춤을 선사한다.

길이 200m 정도의 징검다리는 운치를 더한다. 이 징검다리를 건너면 갈마산 정상으로 가는 입구가 나온다. 갈마산은 말처럼 생긴 산이 황강에서 물을 마시는 형상이라 해 이름 지어졌다. 고도 233m로 정상까지 걸어서 20∼30분이면 충분하다. 중간쯤 오르면 합천읍을 휘감은 황강의 모습이 조금 드러난다. 정상 부근쯤에서 오른쪽 임도로 들어서면 곧바로 확 트인 황강의 광경이 그림처럼 눈에 들어온다.

강을 거슬러 상류로 올라가면 합천호가 넉넉한 풍경을 내어준다. 1988년 12월 합천댐을 만들면서 생긴 인공호수는 산허리를 끼고 도로를 달리는 드라이브 코스로도 잘 알려져 있다. 피어오르는 물안개와 구름바다가 뒤섞인 몽환적 풍경을 자랑한다. 이른 아침 합천호의 물안개와 산자락이 빚어내는 장관은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다.

그 바로 아래 합천영상테마파크도 놓치지 말아야 할 곳이다. 용주면 가호리 8만2500㎡에 영상테마파크가 지리를 잡은 것은 2004년. 1920년대 일제강점기부터 60∼80년대 서울의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다. 조선총독부와 헌병대 건물, 서울역, 반도호텔, 세브란스병원, 파고다극장 등이 당시의 모습을 한눈에 보여줘 타임머신을 타고 옛날로 돌아간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태극기 휘날리며’와 ‘모던보이’를 비롯해 드라마 ‘서울 1945’ ‘경성스캔들’ ‘에덴의 동쪽’ 등이 촬영된 명소다. 전체를 둘러보려면 족히 2∼3시간이 걸린다.

합천 읍내에서 서북쪽으로 눈을 돌리면 우뚝 솟은 봉우리가 시선에 잡힌다. 오도산이다. ‘하늘의 촛불’이라는 뜻의 천촉산(天燭山), 까마귀 머리처럼 산꼭대기가 검다고 해서 오두산(烏頭山)으로도 불렸다. 가야산처럼 높지도 않고 황매산처럼 수려하지도 않지만 62년 우리나라에서 마지막으로 야생 표범이 생포된 산이다.

표범이 사라진 20년 후인 82년 오도산에 도로가 생겼다. 정상에 KT 중계소가 들어서면서 마을 입구에서 1134m 오도산 정상까지 길을 낸 것. 급한 경사로 인해 산 아래에서 정상까지 닿는 포장도로 길이만 10㎞에 달한다.

길은 산골 마을과 숲 사이로 끝없이 이어지다가 팔부능선을 지나면 탁 트인 전망을 펼쳐놓는다. 오르는 길 중간쯤 62년에 생포한 한국 마지막 야생 표범 서식지 안내판이 보인다. 정상에 서면 발아래는 ‘산의 바다’가 펼쳐진다. 첩첩이 이어진 산들이 파도처럼 일렁이는 모습은 감동으로 다가온다.

정상 부근에 3개의 전망대가 있다. 첫 번째 전망대는 일출을 감상할 수 있다. 두 번째는 합천호를 둘러싼 산세가 한눈에 들어오는 곳이다. 중계소 입구에 있는 세 번째 전망대는 황매산을 비롯한 산들이 운해를 뚫고 불쑥 솟아 다도해를 연출한다. 발아래로 산허리를 타고 오르는 도로가 등고선처럼 구불구불한 곡선을 그린다. 오도산에서의 으뜸 풍경은 일교차가 큰 날에 봉우리마다 구름이 켜켜이 둘러싸고 골짜기마다 운무가 깔려 있는 장면이다. 운무가 파도처럼 출렁이며 산을 넘는 풍경도 자주 연출된다.

황매산(1108m)은 가야산과 함께 합천의 명산으로 꼽힌다. 매년 봄이면 전국 최대 규모의 철쭉군락지인 황매산의 철쭉꽃은 ‘산상화원’을 만들고 가을이면 억새가 흐드러진다. 모산재를 중심으로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감싸고 있어 작은 금강산이라 불릴 만큼 아름답다. 정상에 오르면 발아래 합천호와 지리산, 덕유산, 가야산 등이 손에 잡힐 듯 한눈에 들어온다.

정상 턱밑 해발 850m에 주차장이 마련돼 있어 남녀노소 누구나 접근하기 쉽다. 주차장에서 포장도로를 걸어 정상 아래 산성전망대와 배내봉을 거쳐 제자리로 돌아오는 데는 1시간 30분이면 넉넉하다. 부드러운 능선을 따라 억새밭 사이를 산책하듯 돌아보는 코스다.

경상우도를 대표하는 유학자 남명 선생은 불의에 타협하지 않고 의(義)에 기꺼이 목숨을 걸었던 서슬 퍼런 선비다. 목숨을 걸고 타락한 권력을 질타하며 무기력한 지식인 사회에 경종을 울렸다. 황매산에서 그리 멀지 않은 삼가면 외토리에 남명 선생의 생가지가 있다. 그곳에 세워진 용암서원 앞에 그의 흉상이, 그 옆 비석에는 남명이 서릿발 같은 기개로 쓴 상소문이 적혀 있다.

여행메모
황강 징검다리 건너면 갈마산 등산로


수도권에서 승용차를 이용하면 통영대전고속도로 생초나들목이나 산청나들목에서 나가는 게 좋다. 대중교통은 서울남부터미널에서 시외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약 4시간 소요된다.

합천군 용주면 정양레포츠공원 정문에서 오른쪽으로 가다 보면 황강을 가로지르는 징검다리가 나온다. 징검다리를 건너면 갈마산으로 가는 등산로 안내 표지판이 있다.

오도산은 묘산면사무소에서 묘산초등학교를 지나 500m쯤 가다 KT중계소 표지판을 보고 우회전하면 외길이 이어진다.

합천호를 끼고 있는 대병면 일대에는 최근 펜션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아름다운 펜션’(055-931-2343), ‘무지개펜션’(070-8800-2345), ‘동화속 펜션’(055-931-1080) 등이 대표적이다.

합천 돼지고기가 맛나다. 합천초교 맞은편의 어신민물매운탕(055-931-1266) 등도 손에 꼽히는 맛집이다. 어탕국수가 일품이고 메기매운탕은 푸짐하다.













합천=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