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人터뷰] 정치학계 원로 문정인 연세대 명예특임교수 “국정 안정 위해 대통령에 퇴진의 길 열어줘야”

입력 2016-11-30 04:00
문정인 연세대 명예특임교수는 "야당이 주장하는 대로 탄핵으로 간다면 그 과정에서 국민, 국가, 대통령 모두가 상처받을 수밖에 없다"며 "대통령이 사퇴 표명을 했다면 야권도 대승적 차원에서 난국을 타개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윤성호 기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분노한 민심은 주말마다 촛불을 들고 퇴진하라고 외쳤다. 결국 박근혜 대통령이 29일 3차 대국민 담화를 통해 “임기 단축을 포함한 진퇴 문제를 국회 결정에 맡기겠다”고 백기를 들었다. 정치권은 탄핵 수순을 밟고 있다. 특검과 국정조사도 예정돼 있다. 정국은 혼란스러운데 밖으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당선으로 나라가 어떻게 될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이다. 정치학계 원로이자 외교·안보 전문가인 문정인(65) 연세대 명예특임교수를 서울 종로구 동아시아재단 사무실에서 만나 해법을 들어봤다.

-박 대통령의 3차 대국민 담화를 어떻게 보나.

“새누리당에서 얘기하는 ‘명예로운 퇴진’과 맥을 같이한다고 본다. 대통령이 하야 의사를 표명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물러날 테니 대신 대통령직에 있을 때 일에 대해선 형사상 소추를 면하게 해달라는 것이다. 사실상 공을 국회로 넘겼다. 국회가 명예로운 퇴진에 합의하더라도 국민적 저항이 따를 수 있다. 격앙된 국민정서를 어떻게 다루느냐가 정치권의 가장 큰 숙제가 될 것이다.”

-야당은 대통령 담화에 대해 탄핵 탈출을 위한 꼼수라며 탄핵을 계속 추진하겠다고 한다.

“야당 견해에도 일리가 있다고 본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현 정국을 안정화시켜서 국정을 정상화하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박 대통령의 담화를 대통령직 사퇴에 대한 간접적 표현으로 받아들이고 퇴진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줘야 한다고 본다. 대승적 차원에서 난국을 타개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탄핵 절차가 진행된다면 문제는 없나.

“탄핵 소추로 가면 헌법재판소 결정까지 오래 걸릴 수도 있을 터인데 내년 4∼5월 가서야 임기 다 채우고 그만두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또 정치권은 거국중립내각을 이끌어갈 총리를 합의로 선출해야 한다. 지금대로 황교안 총리가 모든 권한을 대행한다면 탄핵 소추, 대선 정국 또는 개헌 논의에 대한 공정성 문제를 야당이나 일반 시민들이 제기할 수 있다. 이른 시간 안에 현 상황을 매듭짓고 국정을 정상화시키는 게 중요하다.”

-검찰이 대통령을 최순실 사태의 공범으로 지목했는데 어쩌다 이런 상황이 벌어졌다고 보나.

“측근 관리를 잘못한 데서 생긴 일이다. 대통령은 미르·K스포츠재단을 문화융성이라는 공익적 목적을 위해 만들었고, 기업들에 찬조를 요청했는데 사적 의도는 하나도 없었다고 얘기했다. 하지만 그걸 집행하는 과정에서 공과 사의 구분이 무너졌다. 마치 국가가 대통령 개인인 것처럼 강한 인상을 줬다. 대통령 혼자서 너무 주먹구구식으로 했다. 국가 권력과 기관의 사유화, 그게 문제의 본질이다.”

-대통령이 검찰 조사를 받겠다고 했다가 또 거부했다.

“대통령의 패착이다. 대통령의 약속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최고 수장으로서의 약속이다. 아무리 불리한 상황이 전개된다 하더라도 검찰 조사에 응하는 게 당연하다. 법 앞에 만인은 평등하다. 입장을 바꾸지 않았으면 좋을 뻔했다. 대통령이 조사를 거부할수록 검찰의 입장은 더욱 강경해지고 대통령의 국민적 신뢰도와 위상은 훼손된다. 대통령이 결백하다면 조사 못 받을 일이 없다고 본다.”

-대통령이 검찰 조사를 버티는 배경은 뭐라고 보나.

“청와대 대변인이 검찰 공소장을 ‘사상누각’과 같다고 표현한 것을 보면 검찰 조사에 상당한 불신을 갖고 있는 것 같다. 대통령 입장에선 형사재판을 받거나 탄핵 절차에 들어가서 모든 것을 잃는 한이 있더라도 이판사판이니까 두 가지를 다 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촛불 민심은 하야를 요구했다. 정치권 원로들도 대통령이 하야를 선언하고 내년 4월까지 퇴진하라고 요구했다.

“대통령이 양식과 이성이 있다면 아무 조건도 달지 않고 좀 더 일찍 사퇴를 표명했더라면 좋았을 뻔했다. 최고의 주권적 권한을 가진 대통령이 막가파식으로 사태 해결을 모색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검찰, 특검, 국정조사라는 삼각파도의 끝은 자명해 보인다. 탄핵 과정에서 국민, 국가, 대통령 모두가 상처받을 수밖에 없다. 지금이라도 박 대통령에게 ‘우아한 출구’를 마련해줘야 한다. 그러나 이미 검찰이 형사상 피의자로 지목했기 때문에 쉽지 않을 것이다.”

-야권 대선주자들은 서로 다른 입장을 내놓고 있다.

“대한민국 야권은 시민을 주도하는 리더십은 안 보이고 시민의 동향을 따라가는 팔로십 정치를 보이고 있어 안타깝다. 대선주자들도 여론 추이와 주말 시위를 보면서 자신들의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이건 아니다. 야당 전체와 새누리당 비주류 모두 하나의 합의된 목소리로 광장 정치를 리드할 수 있어야 한다. 국운과 관련된 중차대한 위기 시점에 이걸 극복할 수 있는 절충적 대안과 희망을 제시해야 한다.”

-제왕적 5년 단임 대통령제의 폐단이 이번에도 드러났다. 그래서 개헌을 하자는 주장이 일고 있는데.

“개헌 논의는 3가지 측면이 있다. 하나는 절차에 관한 것으로 5년 단임 대통령제를 미국처럼 4년 중임제로 하고 대선과 총선 주기를 4년으로 동시화하자는 것이다. 두 번째는 권력 분점에 관한 것으로 대통령 중심제에 문제가 많으니까 차제에 제2공화국처럼 내각 책임제로 가자는 논쟁이 있다. 마지막으로 현행 헌법이 국민의 기본권에 관해 미진한 부분이 많으니 이를 보완하자는 것이다. 이 모든 제안이 중요하지만 지금은 개헌보다는 박 대통령의 국정농단에 집중할 때라고 본다. 개인적으로 5년 단임 대통령제가 문제라고 보지 않는다. 일차적으로 사람이 문제지 제도가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양식 있고 유능한 대통령 뽑으면 그런 문제가 왜 생기겠나.”

-지금까지 박수 받는 대통령이 없었다. 우리나라 정치를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시민의식이 상당히 중요하다. 지금 시위하는 시민들처럼 법과 질서를 지키고 공공이익에 대한 투철한 의지가 있고, 단결된 모습을 보인다면 희망은 있다. 다음 대선에서는 좋은 대통령 뽑을 거라고 본다. 보수, 진보의 문제가 아니고 상식과 순리를 따르는 대통령이면 된다. 상식과 순리가 있으면 소통하기가 상당히 쉽다. 낮은 자세로 소통에 임하면 국민과의 감정이입이 가능해진다. 국민과 같이 웃고, 슬퍼하고, 분노하는 대통령. 그게 우리가 바라는 대통령 아닌가. 물론 그러려면 대통령이 좀 알아야 한다.”

-이번 정권도 정경유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폐해를 끊으려면.

“기존의 법과 제도는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고 있다. 문제는 지도층의 문제다. 인치를 하다 보니 그런 결과가 생긴 것이다. 정치 지도자가 대기업을 상대로 약탈을 하고 대기업은 그걸 빌미로 지대를 추구하다 보니 부패한 공생의 연계 고리를 끊지 못했던 것이다. 때문에 무엇보다 정치, 재계 지도자들의 양식이 선결요건이다. 그리고 시민사회의 감시는 계속 강화돼야 하며 기존의 법과 제도의 미비점을 보완해야 할 것이다.”

-이번 촛불 집회가 새로운 민주주의의 이정표를 세웠다는 평가가 나오는데 어떻게 보나.

“촛불 민심은 한국 민주주의의 새로운 이정표다. 대의민주주의를 직접민주주의, 광장민주주의로 바꾸는 전대미문의 쾌거다. 지금의 대통령 사퇴 표명을 이끌어낸 원동력이기도 하다. 그러나 내년 대선에 촛불 민심이 누구를 선택할지 모른다. 그런 점에서 모든 것은 가변적이다.”

-미국 문제로 들어가서 트럼프 시대를 맞아 한반도가 격변의 시기에 놓였다. 어떤 변화가 예상되나.

“우선 트럼프가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웠기 때문에 오바마의 ‘아시아 회귀전략(Pivot to Asia)’은 폐기될 공산이 크다. 한·미·일 3국 군사공조에도 차질이 있게 된다. 둘째 한·미동맹에서 미국이 더 이상 한국의 무임승차를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한국이 방위비 분담을 많이 하지 않으면 주한미군을 철수하고 동맹 해체까지도 고려할 수 있다. 이는 트럼프 개인의 독선이라기보다는 미국의 전반적 밑바닥 민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제 한·미동맹을 더 이상 만고불변의 진실처럼 간주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한·미 FTA를 폐기하고 보호무역을 하겠다는 것이다. 한·미동맹에 있어 기존 패러다임에 대한 전환을 심도 있게 논의해야 할 것이다.”

-어떤 식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한가.

“1970년에도 닉슨 독트린 이후 북한의 위협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미국이 7사단 2만명을 한국에서 철수했다. 그걸 염두에 두고 자주국방을 할 필요가 있다.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문제도 미국에서 거론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한 준비도 철저히 해야 한다. 65만 대군을 2만7000명밖에 안 가진 주한미군사령관이 통제한다는 것은 누가 봐도 상식에 안 맞는다. 남북 관계가 개선되고 북한 위협이 줄어들면 한·미동맹에 대한 의존도도 낮아지게 되고 중국, 러시아와의 관계도 개선될 수 있다. 트럼프 정부 출범을 계기로 보다 창의적인 균형외교를 할 필요가 있다.”

-트럼프 시대 대북정책은 어떻게 될까.

“오바마의 전략적 인내정책이 폐기될 것이다. 트럼프는 군사적 행동, 아니면 대화와 협상 중 하나를 택하게 될 것이다. 여기서 대한민국 대통령의 역할이 중차대하다. 한국 대통령이 반대하면 트럼프가 군사행동을 할 수 없을 것이다. 반면에 대화와 협상으로 풀자면 그렇게 할 것이다. 이런 결정적 시기에 박근혜 대통령이 무기력해져버린 것이다. 외치는 내치의 연장이다. 새로운 대통령, 새로운 정부가 필요한 이유다.”

문정인 교수는

연세대 명예특임교수, 영문 계간지 ‘글로벌 아시아’의 편집인, 미국 캘리포니아대 샌디에이고(UCSD) 국제정책대학원 크라우스 석좌연구원으로 있다. 한반도평화포럼 공동대표도 맡고 있다. 연세대 국제학대학원장과 통일연구원장, 대통령자문 동북아시대위원장과 외교통상부 국제안보대사직을 역임했다. 연세대 부임 전 미국의 켄터키대, 윌리엄스대, 캘리포니아대 샌디에이고 등에서 10여년간 교수로 봉직했다. ‘The Sunshine Policy(햇볕정책)’, ‘중국의 내일을 묻다’, ‘The United States and Northeast Asia(미국과 북동아시아)’ 등 60여권의 국·영문 저서, 300여편의 학술 논문을 출간했다. 1, 2차 남북정상회담에 특별수행원으로 참석했으며 현재 핵 비확산 및 비핵화 아시아·태평양 지도자 회의 공동의장도 맡고 있다.











만난 사람=이명희 논설위원 mheel@kmib.co.kr, 사진=윤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