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공부방 영어강사인 A씨(33·여)는 서울에서 수년째 자취생활을 하고 있다. 매달 120만원의 수익으로는 높은 주거비용과 생활비 등을 감당하는 게 어려웠다. 신용카드로 돌려막기를 하며 쓰다 카드 값이 체납됐고, 2010년 한 대부업체에서 39% 이자의 300만원을 빌린 뒤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매달 고금리 이자를 내는 것도 버거웠고 빚은 지난해 460만원까지 불었다.
A씨는 지난해 고금리·다중 채무로 고생하는 청년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단체 청춘희년네트워크에 의해 200만원의 부채를 탕감 받았다. A씨 사연을 들은 서울 함께여는교회(방인성 목사)는 나머지 금액 260만원을 일시적으로 상환해줬다. 대신 이 금액을 성경적 토지정의를 실천하기 위한 모임인 ‘희년함께’(공동대표 김경호 목사 등 5인)에 무이자로 상환하며 재무교육 및 상담을 받도록 권했다.
지난 4월부터 재무교육을 받으며 빚을 조금씩 상환하고 있는 A씨는 다시 꿈을 꾸게 됐다고 고백했다. 그는 “그동안 빚 때문에 소망이 없었고 심리적으로 위축됐는데 상담과 자조 모임 등을 통해 회복을 경험했다”며 “저처럼 음지에서 빚으로 고통 받는 청년들을 돕고 싶다”고 말했다.
희년함께는 지난 4월부터 A씨처럼 고금리 부채에 시달리는 청년에게 무이자 대출을 해주는 ‘희년은행’을 운영하고 있다. 청년의 삶을 근본적으로 회복시키기 위해 재무교육 및 상담, 자조모임 등을 병행한다. 이 은행에서 무이자 대출을 받으려면 조합원으로 등록해 매월 3만원 이하의 조합비(희년은행 운영비)를 내야하고 재무교육 등에 참여해야 한다. 청년들은 최대 300만원까지 대출을 받을 수 있다.
희년은행은 조합원의 무이자 저축 등으로 운영된다. 조합원 165명은 대부분 기성세대로 청년의 회복을 위한 일에 동참하기로 했다. 단체조합원으로는 춘천 예수촌교회, 서울 함께여는교회와 성공회희년교회가 있다.
희년은행은 청년 대출 외에도 공동체 정신으로 모여 사는 그룹홈의 전세 보증금 일부를 지원하고 500만원 이상의 채무자에겐 전문가의 채무조정 상담도 알선해준다. 이 같은 상담을 통해 지난 5년 동안 취업준비로 1000만원 가까이 빚을 진 30대 초반의 한 여성이 최근 개인 워크아웃 과정을 진행했다.
김덕영 희년함께 사무총장은 “고금리 부채에 시달리는 청년들은 사회적으로 고립돼 있고 심지어 자살 충동까지 느낀다”며 “상담과 교육을 받은 청년들이 잘못된 재무 습관을 고치고 희년은행 자조모임 등 사회적 관계망을 통해 회복되는 것을 지켜봤다”고 말했다.
청춘희년네트워크도 ‘청년 부채탕감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희년함께, 기독교윤리실천운동, 복음과상황 등 10개 교계단체가 지난해 4월 출범시켰다. 지금까지 27명의 청년들이 1인당 200만원씩 지원받았다. 최근 3차 프로젝트에 선정된 7명의 청년들은 3∼4개월 동안 재무 상담과 교육을 받고 앞으론 ‘더바짝모임’을 통해 자신의 삶을 점검할 예정이다. 청년들은 청년희년네트워크에서 지원 받은 금액을 무이자로 상환하며 다른 청년의 부채탕감에 동참한다.
청춘희년네트워크는 각 교회와 성도들에게 이 같은 취지를 설명하며 청년 부채탕감 운동을 확산해나갈 계획이다. 올해 창립 50주년을 맞은 서울 청운교회(이필산 목사)는 희년 사업의 일환으로 매년 2000만원씩 5년 동안 청춘희년네트워크를 지원키로 했다.
설성호 청춘희년네트워크 본부장은 “학자금 대출 등 빚쟁이로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청년의 어려움은 사회 구조적 문제”라면서 “이들이 채무 악순환에서 벗어나는 것은 한 사람의 삶을 바꾸는 동시에 성경에서 말하는 진정한 의미의 ‘희년’이라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
빚의 수렁에 빠진 청년들에게 희망의 빛
입력 2016-11-29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