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을 떠받치던 ‘마지막 보루’인 새누리당 친박(친박근혜) 핵심 중진의원들이 사실상 백기를 들었다. 이들은 들끓는 ‘촛불민심’을 더 이상 거스르기 어렵다는 측면에서 박 대통령에게 ‘명예로운 퇴진’을 건의했다.
재임 중 탄핵되는 첫 대통령이라는 불명예를 피해야 한다는 판단이 가장 크게 작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민심 수용이라는 명분뿐 아니라 가장 내상을 덜 입는 방식을 택해야 한다는 현실론이 동시에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친박 중진의원 회동에 참석했던 한 의원은 28일 “박 대통령으로선 탄핵되든 안 되든 탄핵 절차에 돌입했다는 것 자체가 큰 수치가 될 수 있다”며 “탄핵되는 방식보다는 명예로운 퇴진이 더 나을 수 있다는 논의를 한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권 원로들이 지난 27일 “내년 4월까지 하야해야 한다”면서 ‘질서 있는 퇴진’을 제안한 점이 이들 결정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회동에선 “원로들의 의견을 대통령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조언해야 한다” “박 대통령에게는 오히려 (명예로운 퇴진 선언이)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 등의 의견이 나왔다고 한다.
‘명예 퇴진’은 차기 대선 등 예측 가능한 정치 스케줄을 짤 수 있는 카드라는 인식도 깔려 있다.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면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기간 동안 국정 공백과 극심한 혼란이 불가피하다는 취지다. 여야 모두 대선 준비가 충분치 않은 상황에서 조기 대선을 치르는 문제를 감안했다는 해석도 있다. 이날 회동에선 탄핵이 아니라 개헌을 통한 박 대통령 임기 축소 방안도 거론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친박 중진의원은 명예 퇴진에 반대하는 의견을 냈다. “박 대통령 자신이 하야할 의사가 없다고 밝히지 않았느냐” “아직 박 대통령은 소명할 기회조차 갖지 못했다” 등 반론을 폈다. 한 참석자는 회동 후 “퇴진 건의로 완전히 의견이 모아졌다기보다는 탄핵보다는 민심을 수용하는 해법을 찾아보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이정현 대표는 허원제 청와대 정무수석에게 전화를 걸어 ‘명예 퇴진’ 건의뿐 아니라 이런 반대 의견도 함께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친박계의 명예 퇴진 건의가 새누리당 비주류를 중심으로 한 탄핵 추진 움직임을 철회시킬지는 미지수다. 비주류 측에선 “때늦은 요구이지만 환영한다”거나 “여당의 탄핵 추진 움직임이 확산되는 것을 막으려는 의도”라는 반응이 나왔다. 정병국 의원은 “명예로운 퇴진이 실현만 된다면 다행이지만 야권의 탄핵 추진 일정을 보면 박 대통령이 입장을 표명할 시간도 촉박하다”고 말했다.
다른 의원은 “친박도 살고 박 대통령도 살려는 의도가 아니겠느냐”며 “비상시국회의에서 논의해 봐야겠지만 탄핵 추진 흐름을 막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일각에선 인적쇄신 칼날을 피하기 위한 친박계의 포석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야권은 “눈앞에 닥친 탄핵소추안 표결을 피하기 위한 꼼수”라며 진정성을 의심했다.
글=김경택 기자 ptyx@kmib.co.kr, 사진=최종학 선임기자
들끓는 ‘촛불’에 친박 핵심들도 ‘사실상 백기’
입력 2016-11-28 2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