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최순실 게이트’에 묻힌 서울대 본관 점거 50일

입력 2016-11-29 04:18
서울대 총학생회가 시흥캠퍼스 실시협약 철회를 주장하며 본관 점거를 시작한 지 50일이 지났지만 출구전략을 찾지 못하고 있다. 학생 2000여명이 5년 만에 학생총회를 성사시키며 점거에 돌입했던 지난달 10일과는 다른 모습이다. ‘최순실 사태’로 학내 이슈가 분산되면서 점거 동력을 잃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28일 서울대 총학생회는 ‘성낙인 총장 규탄 본부점거 50일차 총시위’를 열고 자유발언과 공연을 마친 후 성 총장이 집무 중인 우정관까지 행진했다. 학생들은 “학생을 원천 배제하고 이뤄진 시흥캠퍼스 실시협약은 불통의 상징”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점거를 활성화하기 위해 기획된 촛불집회, 록페스티벌 ‘본부스탁’ 등은 참여가 저조하거나 행사 자체가 무산됐다. 지난달 27일 열렸던 1차 총시위에 참여한 학생도 50명 안팎이었다. 이화여대가 본관 점거와 시위를 통해 총장 사퇴 등 학내 변화를 일으킨 것과는 선명하게 대비되는 모습이다.

2011년 서울대 법인화 반대 본관점거 당시와도 사뭇 다른 분위기다. 당시 본관점거 역시 서울대 학생 2000여명이 참여한 총회로 결정됐다. 점거 다음날 바로 법인화 반대 촛불문화제를 열어 학생 참여를 촉구했다. 본관 안에서는 ‘공부시위’가 진행됐고 점거 2주 후부터는 부총학생회장을 시작으로 릴레이 단식까지 벌였다.

이번 점거가 동력을 받지 못하는 주 원인은 최순실 사태에 있다. 총학생회를 주축으로 박근혜정권 퇴진을 위한 시국대회 등을 여는 동안 시흥캠퍼스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은 뒤로 밀려났다. 시국선언문 철회 소동도 학생들의 냉소를 불렀다. 서울대 총학생회는 지난달 26일 페이스북에 올렸던 최순실 사태 규탄 시국선언문을 6시간 만에 철회했다. 학생들 사이에서 시국선언문이 함량 미달이라는 목소리가 나왔기 때문이다. 총학생회는 “수정의 필요성에 공감한다”며 이틀 뒤 고쳐 쓴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다.

점거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기획된 본부스탁과 DJ파티도 최순실 사태 여파로 무산됐다. “이 시국에 페스티벌이나 파티가 웬 말이냐”는 학내외 지적이 잇따른 때문이다.

시흥캠퍼스가 10년 전부터 장기발전계획에 따라 진행돼온 사업이라 학교가 철회할 가능성이 낮다는 점도 점거 화력을 떨어뜨렸다. 학내 커뮤니티에도 ‘학교의 소통 부족에는 동의하지만 협약 철회는 비현실적’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철회가 힘들다면 학생 입장에서 얻을 수 있는 최대치를 얻어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앞으로 점거는 계속될 전망이지만 학교와 학생 사이의 관계회복은 갈 길이 멀다. 지난 22일 열린 총장과 학내구성원 간 시흥캠퍼스 공개토론회도 서로의 입장차만 확인한 채 마무리됐기 때문이다. 다음 달 1일부터 활동하는 제59대 서울대 총학생회 관계자는 “58대 총학생회와 마찬가지로 본부점거를 이어가는 기조를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임주언 기자 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