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한승주]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입력 2016-11-28 18:13 수정 2016-11-28 21:02

1980년대 말 대학에 들어간 나에게 시위는 불을 뿜는 화염병과 최루탄의 숨 막히는 냄새, 뿌연 이미지로 각인됐다. 진압봉을 휘두르는 경찰의 추격을 피해 힘껏 도망간다. 그러다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시위대에 밀려 한 학우가 옥상에서 추락한다. 누군가는 몸에 시너를 뿌리고 불을 댕긴다. 쇠파이프와 물대포는 지난해까지도 시위에 등장했다.

그래서였다.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는 촛불집회 참여를 앞두고 두려운 마음이 들었던 것은. 대규모 인파가 모일 텐데 충동적인 불법시위로 이어지거나, 무질서한 거리행진으로 행여 다치는 사람이 생길까 가슴이 쿵쾅거렸다. 운동화 끈을 묶으며 나름 비장한 각오를 다졌다. 아직 어린 막내에게는 현금을 쥐어주며 혹시 엄마를 잃어버리면 알아서 집에 찾아오라고 당부했다.

그런데 이게 웬걸? 최근 몇 차례 토요 촛불집회에 참여하며 정말 시위문화가 많이 달라졌음을 실감했다. 최루탄을 맞고 피 흘리던 이한열 열사의 사진으로 기억되는 트라우마를 던져도 될 만큼. 우리 아이들 세대에게 시위는 열정적이지만 차분하고 풍자와 해학이 넘치는 즐거운 광경으로 기억될 법했다.

지난 26일 시위대에 개방된 광화문 앞 율곡로에는 역사적인 순간을 함께하고 있는 사람들만이 느낄 수 있는 기분 좋은 동지의식이 흘러넘쳤다. “사진 한 장만 찍어주실래요” 하는 말이 어색하지 않았다. 누군가는 큰 쓰레기봉투를 들고 바닥에 떨어진 휴지를 주웠고, 또 누군가는 경찰차에 붙은 스티커 자국을 꼼꼼하게 떼었다. 흥분해서 차량에 올라간 시민에게 사람들은 “내려와”라고 진정시켰다. 바리케이드 앞에 대치한 의경을 어떤 이가 꼭 안아주었다. “돈 없고 빽 없어 운전병도 못하고 여기 서 있구나” 하면서.

‘박근혜 퇴진’이란 구호는 엄중했지만 분위기만은 축제였다. 특히 가수 양희은이 등장해 ‘아침이슬’ ‘행복의 나라로’ ‘상록수’를 부를 때 광장에 모인 우리도 하나가 됐다. 노랫말처럼 우리는 행복의 나라로 가기 위해 광장에 모였고, 끝내 이루기 위해 여기에 왔다.

오후 8시 정각, 광화문광장에 모인 150만 촛불이 한꺼번에 꺼지고 온 세상이 암흑 속에 묻혔다. 1분 후 다시 불을 밝혔을 때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박 대통령이 만든 암흑 같은 세상이지만 우리의 촛불로 환하게 밝힐 수 있다는 것을. 세월호 추모곡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의 가사 대로 어둠은 결코 빛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아이로니컬하게도 박근혜 퇴진 구호로 대한민국이 하나가 됐다. 토요일 밤마다 광화문광장은 축제의 장으로 변했다. 전 세계 어느 가수가 150만명이 모인 곳에서 노래를 불렀나. 전 세계 어느 국민이 광장에 이렇게 대규모로 모여 떼창을 했던가.

광화문 시청 종로 등 서울의 중심부가 북적이고, 가게가 불을 밝혔다. 사람들의 손팻말엔 해학과 풍자가 넘쳤다. 아하, 대통령이 대기업에 수백억대의 돈을 거두며 하려고 했던 창조경제와 문화융성이 다 여기 모여 있구나.

시민들은 정말 대단하고 근사했다. 촛불행진은 어두운 밤거리를 빛의 바다로 바꿨다. 시위는 평화롭고 질서정연했다. 150만명이 흩어진 후 광장은 깨끗했다. 연행된 사람도 없었다. 시위는 폭력이라는 편견을 깨뜨렸다. 세계도 놀랐다.

인구의 3.5%가 평화적으로 거리에 나서면 정권이 무너진다는 ‘3.5%의 법칙’이란 게 있다. 지난 주말 전국적으로 5000여만 국민의 3.5%를 웃도는 190만명이 집회에 참석했다. 대통령의 지지율은 바닥이다. 국민이 보여줄 수 있는 건 다 보여줬다. 이제는 청와대가 답할 차례다. 국민의 엄중한 요구를 새겨들어야 한다. 더 이상 결단을 늦춰서는 안 된다. 한승주 문화부장 sj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