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당 태종(太宗) 시대에 왕에게 직언을 잘하는 위징(魏徵)이라는 신하가 있었다고 한다. 태종이 위징에게 군주가 어떻게 해야 일을 잘 처리할 수 있는지를 묻자 위징은 “겸청즉명 편신즉암(兼聽則明 偏信則暗)”, 즉 여러 가지 의견을 들으면 현명해지고 한쪽 의견만 들으면 아둔해진다고 답하였다고 한다. 우리 생활의 곳곳을 규율하는 법을 만들 때도 마찬가지다. 정부에서 법을 만들 때에는 국민의 다양한 의견을 들어야 한다. 그러기에 법령의 입법취지 및 주요내용을 미리 국민에게 알리는 입법예고(立法豫告)라는 제도는 국민의 소중하고 다양한 의견을 듣기 위한 입법절차로서 중요하다.
우리나라는 1983년 입법예고를 실시해 국민의 입법참여 기회를 확대하고, 국민 의사에 바탕을 둔 입법을 추진함으로써 법령의 실효성을 높여왔다. 최근에는 입법예고 제도가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도록 지난 4월 통합입법예고센터를 개통했다. 종전에는 관보(官報)를 통해 입법예고 기간과 주요 내용을 확인한 후에 다시 각 부처 홈페이지를 따로 찾아서 법령안의 자세한 내용을 볼 수 있었으나 이제는 통합입법예고센터에서 한 번에 모든 입법예고 법령안과 제정·개정 이유서 등 참고 자료를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의견을 따로 작성하여 우편이나 팩스로 제출해야 했던 것이, 이제는 통합입법예고센터에서 간단한 댓글을 입력하는 쉬운 방식으로도 국민의 소중한 의견을 낼 수 있다. 법은 형식상으로는 국민들의 행동을 제약하는 것이지만 궁극적으로는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통합입법예고센터의 성과는 그동안 입법예고 법령안에 대한 제출의견 건수의 증가로 나타나고 있다. 4월 개통된 이후부터 11월까지 1300여건의 입법예고 법령안이 게시돼 3만2000여건의 의견이 제출됐다. 이는 작년 한 해 동안 입법예고 법령안에 대해 제출된 5500여건에 비해 무려 다섯 배 가까운 수치다. 대표적으로는 올해 9월 시행된 한국감정원법 시행령 제정안에 대해 많은 국민이 관심을 보인 바 있다. 이 법은 지난 40년 이상 감정평가 등에 관한 업무를 수행해 온 한국감정원의 설립근거를 마련하고 기능을 개편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부동산의 가격 변동과 부동산 시장정책 등에 관심이 많은 국민이 통합입법예고센터라는 창구를 통해 보다 쉽게 많은 의견을 제출한 것이다. 실제로 40일의 입법예고 기간 동안 무려 1만800여건의 의견이 통합입법예고센터를 통해 접수되었는데, 입법예고 원스톱 서비스가 나름의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또한 의견을 받는 담당 공무원은 제출된 의견에 대한 처리 결과를 안내해준다. 법이 국민들과 친숙해 지도록 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불편한 법, 무서운 법이 아니라 친근한 법, 편리한 법이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법도 국민과 함께 할 때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실제 법령안에 반영된 의견도 있다. 예를 들면, 감정평가 및 감정평가사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 제정안에 대한 입법예고 과정에서 감정평가 정보체계에 등록해야 하는 정보가 너무 방대하여 사생활 침해 소지가 있다는 의견이 제출됐다. 이에 관계 부처는 평가목적까지 추가로 고려하여 경매평가 정보를 등록대상에서 제외한 바 있다. 이 사례는 통합입법예고센터를 통해 국민의 다양한 의견을 듣기 위한 입법예고 제도의 모습과 방향을 잘 제시해 준다. 즉, 통합입법예고센터는 정부가 정보를 적극적으로 공개하고 국민이 입법 과정에 쉽게 참여할 수 있도록 겸청즉명의 취지를 구현한 제도이다. 앞으로 통합입법예고센터가 더 널리 활용됨으로써, 입법과정에 대한 국민의 알권리를 보장하고 국민주권의 가치를 실현하는 데 기여하기 바란다.
황상철 법제처 차장
[기고-황상철] 겸청즉명의 입법예고 제도
입력 2016-11-28 18:40 수정 2016-11-28 20:57